한·중 탁구 ‘챔피언 DNA’ 미국 그린에서 꽃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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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안병훈(右)이 캐디를 맡은 아버지 안재형씨의 어깨를 감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털사 AFP=연합뉴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아니 ‘그 부모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올림픽 탁구 메달리스트 출신인 아마추어 골프선수 안병훈(18) 이야기다. 1989년 국경과 이념을 뛰어넘어 결혼에 골인한 ‘핑퐁 커플’ 안재형(44·전 대한항공 탁구팀 감독)-자오즈민(46)의 외아들이다.

안병훈은 30일(한국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의 서던힐스 골프장(파70·7093야드)에서 매치플레이 방식으로 열린 US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 4강전에서 바비크 파텔(미국)을 3홀 차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벤 마틴(21·미국)과의 결승전은 31일 오전 같은 장소에서 36홀 매치플레이로 열렸다. <결승전 경기 결과는 www.joins.com 참조>

1991년 9월 17일생인 안병훈이 결승전에서 승리하면 지난해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19·한국이름 이진명)가 세운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18세1개월)을 갈아치우게 된다. 이제까지 한국 국적 선수가 US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올해로 109회째를 맞는 US아마추어챔피언십은 타이거 우즈(미국)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을 챔피언으로 배출했던 최고 권위의 아마추어 골프대회다.

◆내년 마스터스 출전권 획득=안병훈은 이날 11번 홀까지 파텔에게 뒤졌지만 13번 홀부터 4홀 연속 승리하면서 힘겹게 결승에 진출했다.

“내년 마스터스에 나갈 수 있다니 꿈만 같다.” 안병훈은 결승 진출을 확정 지은 뒤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유창한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준결승전을 앞두고 잠을 설쳤다. 한 번만 더 이기면 (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준결승 경기 내내 무척 떨렸지만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실수를 많이 저지르긴 했지만 오늘 경기는 내 생애 최고의 승리였다.”

안병훈은 키 1m86cm, 몸무게 96㎏의 건장한 체격에 드라이브샷 거리가 300야드를 넘는 장타자. 안병훈은 “여기까지 올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당초 목표는 1회전 통과였다. 옷도 다섯 벌밖에 준비하지 못해 결승전에 입고 나갈 옷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아들의 캐디를 맡은 아버지 안재형씨는 “병훈이 영어 이름이 벤인데 워낙 체구가 크고 장타를 날려 친구들이 ‘빅 벤’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왼쪽 사진은 안재형(右)-자오즈민(左) 부부가 어린 시절 골프 클럽을 손에 쥔 병훈군과 포즈를 취한 모습. [중앙포토]


◆아버지의 뒷바라지=안병훈은 9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탁구 스타’ 안재형-자오즈민 커플의 사랑의 결실이었다. 아들은 어렸을 때는 운동에 썩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안병훈이 골프 클럽을 처음 잡은 것은 여섯 살 때.

안씨는 “어렸을 때 병훈이는 뚱뚱한 편이었다. 우연히 골프연습장에 데리고 갔다가 골프클럽을 손에 쥐어줬는데 곧잘 공을 쳤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듬해부터 특별활동 시간에 골프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안병훈은 중학교 2학년을 마치던 2005년 12월 본격적인 골프 유학을 위해 미국 플로리다주로 건너갔다. 이때부터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는 ‘미완의 대기’일 뿐이었다. 키가 쑥쑥 자라나면서 장타 실력은 뛰어났지만 세기가 부족했다. 2007년 3월, 안병훈은 갑자기 빈혈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휴직계를 내고 당장 미국으로 건너갔다. 안씨는 당시 대한항공 탁구팀 감독을 맡아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직장을 포기한 것이다. 이때부터 안씨는 아들 곁에서 뒷바라지를 했다.

안씨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골프를 시키는 부모 입장에서 양용은 프로가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안병훈의 어머니 자오즈민은 현재 중국 베이징에서 휴대전화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아들의 결승 진출 소식을 접한 자오즈민은 “병훈이가 이렇게 잘할 줄은 미처 몰랐다. 다음 달 미국에 갈 예정이었는데 당장이라도 현지로 날아가고 싶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제원·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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