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지역'문제, 피해자가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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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91년4월 26일 저녁 KBS - TV 7시뉴스에 명지대생 강경대 (姜慶大) 군이 시위도중 전경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이 전파를 탔다.

사건발생 시점이 오후 5시10분이고, 시위와 진압의 와중에서 병원에 옮기는 도중 사망한 사건이라 제1보 (報) 성격의 짤막한 '단독보도' 였으나 이 보도가 빌미가 돼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국가관 결여' 와 '비협조 보도' 라는 죄목이 등장했다.

조사결과 출고 (出稿) 부서 책임자인 사회부장이 당시 보도본부의 부장급 이상 간부중 유일한 호남출신이었고, 바로 이 점이 이 보도의 원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뒤따라 "어떻게 전라도 사람이 KBS사회부장을 할 수 있느냐" 는 정부 고관의 장탄식이 나왔고, 그 부장은 우여곡절끝에 부임 5개월만에 한직으로 쫓겨갔다.

"그래, 우리는 쿠르드다" 하는 또 다른 탄식이 바람결을 탔다.

바로 그 '어떻게 전라도 사람이…' 라는 잠재의식 때문에 요즘 '호남득세' 시비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항변이 있다.

반면 '호남독식' 과 '영남소외' 가 지역감정 증폭의 원인이라는 맞은 편쪽 항변도 있다.

'독식' 이나 '소외' 논쟁은 그래서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분명한 검증결과가 나와주는 게 좋다.

이른바 '지역문제' 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뜨거운 감자가 최근 다시 기류를 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초순 경찰청장을 경질하며 행정자치부장관이 '호남인맥 형성' 을 거론하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호남인맥 형성이 경질이유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질 당시 경찰청의 경무관급 이상 고위직 62명 중 영남은 25명이었고 호남은 14명이었다.

행자부장관의 문제제기는 청와대의 특정고교 인맥거론.편중인사 차단지시로 이어졌으나, 지난달 하순 경찰 고위직 인사때는 또 이야기가 달라졌다.

치안감 승진자 10명 중 영남 3명에 호남 1명인 까닭에 대해 '과거정권에서 호남출신이 소외돼, 승진후보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었기 때문' 이란 설명이 있었다.

한 조간신문은 최근 정부 각 부처 3급 이상 고위직중 영남출신이 1백51명이고, 호남은 1백20명이라는 조사결과를 보도하기도 했다.

행자부장관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호남편중 여부를 단순한 머리 수 비교로는 알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요직 독식' 이야기다.

그러나 그 반론에 대한 반론도 있다.

예컨대 요직중 요직으로 일컬어지는 권력3청 (廳) , 즉 검찰.경찰.국세청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현재 검찰총장은 역대 총수 28명 중 유일한 호남출신으로, YS때 임명된 임기직이다.

영남출신이 현재의 청장인 경찰의 경우 역대총수 53명 중 호남은 단 2명이고, 서울청장도 역대 54명 중 2명뿐이다.

국세청장은 그나마 호남출신이 있어본 적이 없다.

권력 3청의 역대 총수 중 영남출신이 얼마나 되는지는 사람들이 다 안다.

편중이니 독식이니 하는 소리가 나올 때마다 당사자인 호남쪽이 억울한 심정에 끙끙 앓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역감정을 확대.재생산하거나 호남 부족분 (不足分) 을 다시 채우자는 뜻이 아니라 실상만은 정확히 알고 넘어가는 게 옳다는 이야기다.

한나라당의 마산집회를 앞둔 지난달 23일 각 일간지 1면에는 희한한 통단광고가 게재됐다.

요컨대 이 정부가 영남을 호남에 비해 결코 푸대접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예산도 영남보다 호남에 훨씬 덜 갔고, 어음부도율도 호남이 더 높다고 했다.

경제고통지수를 YS정부때와 비교하면 대구는 전국 4위→10위로 내려가 상대적으로 낮아졌고, 광주는 7위→2위로 오히려 고통이 심해졌다는 대목도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분명 호남을 차별해 푸대접했다는 고백이다.

그런데도 그 광고의 제목은 '국민의 정부에 지역차별은 없습니다' 였다.

지역문제는 영.호남 모두가 피해자라는 '좋은 말' 도 있다.

그렇지만 지난날을 조감 (鳥瞰) 해보면 누가 뭐래도 1차적 피해자는 역시 호남이다.

그러나 바로 피해자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호남이 나서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국이후 처음일망정 현재의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이유도 있다.

영남도 거들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꼴이 제대로 잡힌다.

특히 호남은 보채서는 안된다.

"연말까지 경제가 잘 풀리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는, 어찌보면 '잘못됨' 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 엄존 (儼存) 하고, 이는 'DJ가 잘못돼주기만 한다면 나라가 잘못돼도 무방하다' 는 뜻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나라가 우선이라서 하는 소리다.

오홍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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