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앤잡③] 해설가들이 말하는 가장 아찔했던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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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연(MBC)=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중계할 때다. 대만전 8-0으로 앞서가다 8점을 내줘, 9-8로 힘겹게 이겼다. 그 때 헤드셋을 벗고 한 말이 그대로 방송에 나갔다. (당시 허 위원은 "드라마를 썼네. 감독은 김경문, 주연은 한기주"라고 한국팀 경기를 드라마에 빗댔다.) 그 때 욕이라도 했으면 아마 지금 방송을 못할 것이다. 그 이후로 평소에도 말을 점잖게 하려고 한다.

이병훈(KBS N 스포츠)=캐스터와 PD는 내가 마이크를 잡을 때면 긴장한다.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는 내 성격 탓이다. 한 선수가 불성실한 수비를 했다. 그때 "저렇게 불성실한 수비를 하는 선수는 99% 성질이 못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심판을 향해서는 "저런 것은 오심이 아니라, 사심입니다"라는 해설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위험수위를 오가는 해설을 할 때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은 내 아내다.

구경백(경인방송)=투수 보크에 관한 일화다. 타자가 친 공이 파울이 됐다. 그 순간 1루심이 투수 보크를 선언했다. 그런데 나는 기록을 하다 그 장면을 놓쳤다. 중계부스에서 1루심 목소리가 들릴 리도 없고. 주자 1루에 원 스트라이크가 돼야 하는데 주자 2루에 노카운트가 되더라. 순간 정신이 없었다. 파울이 됐는데 주자가 2루로 가는 경우를 곰곰히 생각했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났다. 그래서 그냥 보크라고 넘겨짚었다. 곧바로 대기심판에게 전화해 물었다. 다행히 보크라고 했다.

한만정(MBC ESPN)=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일전을 라디오로 중계했다. 한명재 캐스터가 후지카와가 어떤 선수냐고 물었는데 "국광이 올라오든 후지가 올라오든 무슨 상관입니까? 잘 깎아 먹어야죠"라고 대답했다. 즉흥적으로 떠오른 말이었다. 이종범이 2타점 2루타 쳤을 때 감정에 북받쳐 그냥 엉엉 울었다. 한 캐스터가 "위원님, 말하세요"라고 쿡 찔렀는데 계속 울었다.

김인식(한화 감독)="배문고 감독 시절, 우연한 기회에 해설가로 나선 적(1975년 제9회 대통령배 고교야구)이 있다. 광주일고와 경북고의 결승전을 보기 위해 동대문구장을 찾았다. 그런데 나를 알아본 방송 관계자가 급하게 '해설을 맡아달라'며 중계부스로 끌고 갔다. 준비도 못했지. 그날 광주일고 김윤환이 3연타석 홈런을 쳤는데 캐스터가 그게 최초인지 아닌지 묻는데 진땀을 뺐다. 그리고 마이크는 어찌나 무거운지. 자꾸 팔이 내려오는데 캐스터가 자꾸 팔을 치더라.

마해영(Xports)=첫 방송이던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중계였다. 말이 기어 들어갔다. 말을 할 타이밍도 잡지 못했다. 화면을 따라가며 말을 해야 되는데 말하는 도중에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동석했던 이효봉 선배가 편안하게 말을 하는 게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 없었다. 처음 해 본 방송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J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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