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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병'엔 역시 한국병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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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말기 간경변으로 간 이식을 위해 세계최대의 간 이식센터인 미국 UCLA병원을 찾은 중견영화감독 B씨는 최근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간을 이식받기 위해선 1년을 기다려야 하며 간 이식에 관한 한 국내의료기술이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B씨는 A병원에서 아들의 간 일부를 떼어내 이식하는 부분 간 이식술을 기다리고 있다. 협심증으로 고생하던 중견기업인 K씨는 마음을 바꿔 성공한 케이스.

심장병 치료로 유명한 미국 클리블런드클리닉에서 수술받기로 했으나 치료성적과 비용 면에서 한국에서 받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재미교포 의사의 말을 듣고 B병원에서 관상동맥 스텐트확장술을 받고 완치의 기쁨을 누렸다.

난치병으로 외국 유명병원을 찾았다 돌아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인 탓도 있지만 국내병원의 치료성적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의료수준이 특히 뛰어난 분야는 위암과 간암 등 한국인에게 흔한 질환. 간암의 경우 세계 1위, 위암은 일본 다음으로 환자가 많다. 따라서 선진국 병원보다 수술 건수가 월등히 많아 치료기술의 축적에 유리하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 노재경 (盧在京) 교수는 "한국인에게 흔한 질환의 경우 외국병원을 찾는 것은 난센스" 라고 강조했다. 정교한 손 기술이 요구되는 수술에서도 국내의사들이 단연 두각을 나타낸다.

간 이식술이 대표적 분야. 서울중앙병원 일반외과 이승규 (李承奎) 교수팀이 B형간염 간경변으로 간 이식술을 받은 환자들의 수술성적을 미국UCLA병원과 비교한 결과 수술 후 조기 사망률이나 B형간염 재감염률 등에서 모두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결은 수술 후 면역글로불린을 투여해 생존율을 현저히 높였기 때문. 현재 이식 후 6개월 이상 생존자만 56명에 달하며 최장 생존자는 6년4개월째 살고 있다.

李교수는 "1년 동안 이식받은 간이 살아있을 확률이 뇌사자 간 이식의 경우 72%, 생체부분 간 이식의 경우 81%에 달한다" 고 강조했다.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백병원도 비슷한 결과를 얻고 있다. 불임치료는 전통적으로 국내 의료진이 선두를 지켜온 분야. 91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커버로 차병원의 불임치료기술이 소개됐으며 98년 세계불임학회에선 복강경을 이용한 미세난관복원술로 최우수논문상을, 난자 동결보존법 개발로 우수논문상을 차지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차병원.마리아병원.영동제일병원.삼성제일병원 등 민간병원이 주도하고 있는 국내 불임전문병원의 시험관 아기나 정자 직접 주입술에 의한 임신 성공률은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 오히려 미국과 일본에서 의사들이 최신불임치료기술을 배우러 한국을 찾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차병원과 미국콜럼비아대 병원은 공동으로 뉴욕시에 불임전문치료센터인 C.C불임센터를 설립, 3월 중 개원할 예정이다.

순수한 학문적 교류를 떠나 이례적으로 진료수익의 절반을 로얄티로 받는다는 것. 국내의료진의 불임치료기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심장병 치료에서도 국내 병원들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심혈관센터 이원로 (李元魯) 교수팀이 최근 이 병원에서 시행한 관상동맥확장술 환자 8백 91명의 1년간 추적관찰결과를 미국 주요병원연합 (NACI) 의 평균치료성적과 비교한 결과 훨씬 좋은 성적을 보였다.

신촌세브란스병원.서울중앙병원 등 다른 국내의료기관의 관상동맥 확장술도 선진국에 손색없는 결과를 보인다는 것. 반면 선진국에선 관상동맥 확장술 치료비가 6천달러 (한화 7백20만원) 로 국내 치료비 (1백50만원) 보다 5배 가까이 많다.

李교수는 "대규모 인력과 시설이 필요한 기초의학과 달리 임상의학은 선진국과 격차가 거의 없다" 며 "여기에 비용문제까지 감안한다면 난치병이라고 선진국을 찾을 이유는 없다" 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처럼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국내병원이 몇몇 병원에 불과하다는 것.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창엽 (金昌燁) 교수는 "비현실적으로 낮은 의료보험수가를 개선해 의대교수들이 박리다매식 진료에서 벗어나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병원의 진료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공신력있는 병원평가기관에서 매년 치료성적과 합병증, 서비스 수준을 평가해 발표하고 이를 근거로 의료보험회사가 진료비를 차등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보건복지부 주도하에 병원평가를 실시했으나 진료내용보다 친절이나 시설 등 서비스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그나마 결과발표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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