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여섯번째 시집 '몇날째 우리세상'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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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매일처럼의 만취는 나를 비대한 게으름뱅이로 만들었고, 실험성 없는 시에 안주토록 했다. 남의 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시와 연관된 것을 공부하지 못하고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삶에 대해 고뇌하지 못한 결과였다. 긴장해 있지 않는 정신에서 어떻게 좋은 시가 나올 수 있었겠는가. "

최근 나온 이유경씨의 여섯번째 시집 '몇날째 우리 세상' (문학수첩.5천원)에는 해설을 겸하는 발문 대신 위와 같은 시인의 혹독한 자기 비판이 실려 눈길을 끈다.

'내 어리석음의 편력' 이란 제목의 이 글에서 시인은 68년 첫시집 '밀알들의 영가' 에서부터 반성을 시작한다. "자비 (自費) 출판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시절에 '어떤 고마운 분' 의 후원에 의해 시리즈로 나온 몇 권의 시집 중 하나였다…이 시집들은 한국시협회장이었던 박목월이 '육영수전기' 를 만드느라 청와대를 오가면서 얻어낸 과실이었다. " 그후의 자아비판도 계속된다.

30년대 영미시에 도취해 있었던 것, 자신도 설명못할 난해시나 어처구니없이 섹스에 관한 표현을 자주 등장시킨 시를 쓴 것, 시로써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으면서도 유신직후 저항시쪽을 흘깃거리며 양다리를 걸쳤던 것 등등.

"머나먼 나라서 온 서리를 맞아/낙엽으로 전락한 잎들 가운데/가장 불쌍한 낙엽 하나 비료가 되려다/시멘트 바닥서 오늘 한숨 쉬고/그의 무력한 하느님이/정처 없이 바람 부르러 갔다" 이번 시집에 실린 '낙엽에의 상념' 중 한 대목이다. 자기에게는 혹독하면서도 세상 미물에는 연민을 감추지 못하는 시선이 신선하다.

그래서 그의 시세계는 '소외된 것, 변두리에 대한 관심' 으로 요약된다. 너나없이 '문학의 위기' 를 얘기하지만 '내 탓이오' 는 들리지 않는 시대, 그의 자기 비판 역시 '변두리' 적 감수성 같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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