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내수주 '감' 빨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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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정부가 콜금리 인하 등 내수 부양으로 정책을 돌리면서 내수주에 햇볕이 들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침체 장세에서도 줄기차게 내수주를 매입해온 외국인들이 이번에도 '길목'을 제대로 지켰다는 부러움을 사고 있다.

◇외국인의 내수주 사재기=외국인들은 지난달 이후 매수를 재개하면서 내수 관련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가계와 중소기업 연체율 상승에 시달리는 은행주와 부동산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건설주 등 국내 투자자들이 외면한 내수주를 거둬들였다.

순매수 규모는 7월 이후 11일까지 은행업종 2983억원, 유통업종 669억원, 건설업종 531억원 등에 달했다.

종목별로는 내수 대표 종목인 신세계.현대백화점(유통), 국민은행.신한지주(은행), LG건설.현대산업개발(건설) 등을 공략했다. 이에 비해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은 이들 종목을 내다팔았다.

이에 따라 내수 우량주들의 외국인 지분율도 높아졌다. 국민은행의 경우 외국인 보유 지분은 사상 최고치인 77.9%로 높아졌고, 현대백화점은 43.7%에서 46.4%로 상승했다. 외국인 매수가 집중되면서 주가도 올랐다. 7월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4.1% 빠진 상황에서도 은행업종이 3.5% 올랐고 유통업종은 0.5% 하락에 그쳤다. 신한지주가 11.5%, 현대백화점은 13.8%나 상승했다.

◇파격 행보의 배경=7월 이후 국내 증권사와 연구기관들은 내수 회복 시점이 내년 상반기 이후로 늦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잇따라 내놓았다. 하지만 이 무렵 외국계 증권사들은 오히려 내수주를 추천하는 보고서를 내놨고, 외국인들의 매수 행진도 이어졌다.

JP모건이 이달 초 한국 모델 포트폴리오 재평가를 통해 소비주와 금융주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LG투자증권 강현철 연구위원은 "외국인들은 내수가 더는 나빠질 것이 없다고 보고 먼저 움직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곧 내수 부양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쪽에 베팅한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콜금리만 해도 국내 전문가 대다수가 물가 때문에 한국은행이 내리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지만 일부 외국계 증권사는 콜금리 인하 가능성을 크게 잡았다.

JP모건 임지원 이사는 "자생적인 내수 회복이 어려운 이상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기 부양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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