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무조건 등원” 선언 … 한나라 “다행스러운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9월 정기국회에 조건 없이 등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22일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직권 상정 처리에 반발, 국회를 보이콧하고 장외투쟁을 해오던 데서 방향을 튼 것이다. 민주당은 “미디어법 원천무효” “국회의장 사퇴” 등을 주장하며 ‘100일 장외투쟁’에 나섰었다. 소속 의원 대다수는 의원직 사퇴서를 써 정 대표에게 맡겼고, 정 대표와 천정배·최문순 의원 등은 김 의장에게 직접 사퇴서를 제출하고 보좌진마저 모두 해촉했다.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는 한 18대 국회를 거부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것이다. 이 같은 초강경 투쟁을 주도했던 건 정 대표였다. 그는 장외투쟁 초반부터 등원론이 제기됐을 때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다”(8월 6일 광주지역 기자간담회)며 강경 노선을 고집했다.

이러던 정 대표가 국회 등원을 결정했다. 그는 ‘등원’이란 말 대신 ‘원내외 병행투쟁’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민주당은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두 전 대통령(김대중·노무현)의 유지를 받들겠다”며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 등 ‘3대 위기’의 극복과 언론악법 원천무효화를 위해 원내외 병행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가 등원론을 받아들인 데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서거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얘기가 많다. 원내대표단에 포함된 한 의원은 “장외투쟁의 동력이 좀처럼 붙지 않는 상황에서 DJ 서거로 ‘화해’와 ‘통합’이 강조돼 극단적인 투쟁방식을 고집하기 어려운 여건이 됐다”고 말했다. 당내에 “조건 없는 등원에 동의하는 의원이 80~90%”인 상황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강경론자인 정 대표는 전날 지도부 회의 때도 “밖에서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도 있는데, (민주당이 등원하면) 미디어법 무효투쟁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고, 국민의 관심도도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당내 강경파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강경파들은 등원 결정에 들썩이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우리 스스로 입장을 철회하고 등원할 수 있을 정도로 얻은 성과가 무엇이냐”며 “지도부의 전격 등원 결정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직접 제출한 천정배·최문순 의원은 당의 방침과 상관없이 장외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의장에게 사퇴서를 던진 정 대표 자신은 원내활동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만각(晩覺)이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빨리 여야가 머리를 맞대 국회 일정을 협의해서 성과 있는 정기국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한나라 “민생국회”, 민주 “위기극복 투쟁”=민주당의 등원 결정으로 정기국회는 다음 달 1일 열리게 됐다. 허용범 국회 대변인은 “28일 국회의장 명의로 정기국회 소집 공고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정훈·민주당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접촉을 갖고 의사일정을 논의했지만 입장 차는 여전히 크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너무 많은 법안이 밀려 있기 때문에 상임위를 총 가동해야 한다”며 민생 국회에 치중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여야는 화합의 관계가 아니라 견제와 경쟁 관계”라며 투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한나라당은 선거제도·행정구역 개편과 개헌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계획인 반면 민주당은 미디어법 무효화 등의 주장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임장혁·선승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