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옷 입는 비틀스, 아날로그 전설 다시 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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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팝의 전설’로 불리는 비틀스의 앨범이 디지털로 리마스터링 된다는 소식에 전 세계 팬들이 들썩이고 있다. 왼쪽부터 링고 스타,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를 따라 흥얼거리며 거리를 걸어 본 적이 있는지?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 차원 높은 음질로 비틀스를 만나게 될 전망이다. 비틀스 전곡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애플 레코드와 음반사 EMI가 다음달 9일 비틀스의 14개 앨범 타이틀 전곡을 디지털로 재녹음한 리마스터링 앨범을 전세계 동시 발매하기 때문이다.

또 비틀스의 명곡 ‘옐로 서브마린’(Yellow Submarine)을 벨 소리로 설정한 친구들의 휴대전화를 본 적이 있는지? 아마 없을 것이다. 비틀스의 음악은 지금까지 다른 가수가 부른 리메이크곡을 제외하고는 온라인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들은 라디오 방송이나 CD로 비틀스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리마스터링 앨범을 계기로 비틀스 또한 온라인 공간으로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

비틀스 앨범의 리마스터링 소식에 전세계 팬들이 들썩이고 있다. 일단 이번 앨범은 CD 형태로 나온 기존 앨범과 음질의 수준을 달리한다. 기존의 CD가 아날로그 음원을 디지털로 형태만 전환한, 쉽게 말해 옷만 바꿔 입은 것이라면, 이번에는 아예 원곡의 녹음 자체를 풀어 디지털로 리마스터링함으로서 훨씬 풍성하고 원곡에 가까운 맛을 살리게 됐다. 모노로 녹음된 초기 4장 앨범도 스테레오로 재발매된다.

◆4년에 걸친 디지털화 작업=비틀스의 리마스터링 작업은 최근 몇 년 음악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2006년 일명 ‘사과전쟁’으로 알려진 애플 레코드사와 애플 컴퓨터사의 로고관련 소송 과정에서 비틀스의 리마스터링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된 후부터다. 팬들의 기다림은 길었다. 영국 런던에 있는 EMI 애비로드 스튜디오 엔지니어팀이 4년간 이 작업에 매달렸다. 엔지니어팀의 폴 힉스는 ‘버라이어티’ ‘LA타임즈’ 등 외신 인터뷰에서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비틀스의 음악’이다. 우리에게 거대한 도전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비틀스 리마스터링 앨범은 영국에서 발매된 12장의 정규앨범과 1987년 나온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Magical Mystery Tour), 기획앨범인 ‘패스트 매스터 1, 2’(Past Master Vol I and II)를 포함해 총 14장의 타이틀, 16장의 CD로 구성됐다. 비틀스 다큐멘터리가 담긴 DVD도 포함됐다.

◆지구촌 비틀스팬 술렁=‘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평가 받는 비틀스인 만큼, 음반 재발매를 둘러싼 소문도 무성하다. 음반 출시날짜를 ‘090909’, 즉 2009년 9월 9일로 정한 것은 그들의 노래 ‘레볼루션 9’(Revolution 9)의 마지막 구절인 ‘넘버 나인, 넘버 나인, 넘버 나인’(Number nine, Number nine, Number nine)을 떠올리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애플과 EMI는 아직 구체적인 이벤트 내용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음반발매에 맞춰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를 비롯한 스타들이 참여하는 대형 이벤트가 열릴 것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국내 반응도 뜨겁다. 국내 발매사인 워너뮤직코리아를 통해 이미 5만 여장이 예약 판매됐다.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31일부터 내달 9일까지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틀스의 음악 9곡’을 투표로 선정,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최초 방송한다.

◆비틀스, 게임으로도 즐긴다=리마스터링 음원이 온라인에서도 즉시 서비스될 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애플사 측은 “음원 서비스 문제를 계속 논의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음반출시와 동시에 이번 음원을 이용한 온라인 게임 ‘더 비틀스: 록밴드(The Beatles : Rock Band)’가 공개된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서비스도 곧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다.

‘더 비틀스-록밴드’는 게이머들이 TV에서 나오는 비틀스의 연주장면 3D애니메이션을 보며, 각자 기타·드럼 등의 악기를 선택해 버튼을 눌러 연주하는 게임이다. 게임에는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 ‘데이 트리퍼’(Day Tripper)’ 등 45곡의 리마스터링 음원이 쓰였으며 TV 화면에는 비틀스가 세계적인 록밴드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나온다.

이영희 기자

◆디지털 리마스터링(DMR·Digital Re-Mastering)=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된 영상이나 음향을 디지털로 변환해 화면과 음질을 10배 이상 개선시키는 첨단기술. 오래된 필름영화나 LP음반을 깨끗하게 복원하거나, 필름영화를 아이맥스 같은 디지털영화로 전환하는 과정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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