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어협 실무협상 결렬…'연 5천억 어장 뺏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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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4일 오후 일본 쓰시마 (對馬) 섬 남단 서쪽 63㎞ 해상 - .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 (EEZ.연안에서 35해리 밖) 경계선상 주위에 포항선적 20여척의 한국어선들이 조업을 중단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새로운 한.일 어업협정이 발효된 22일 오후 조업 중 20여척의 일본 순시선에 의해 일본의 EEZ 바깥으로 쫓겨났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 나포하겠다" 는 위협에 어선들은 바닷속에 내려둔 그물 등 각종 어업장비를 그대로 둔 채 황급히 빠져나왔다.

이 수역에 가로 5m.세로 8천m짜리 그물을 남겨두고 포항항으로 돌아온 제7영남호 선장 김영식 (金永植.51) 씨는 "일본측이 마치 전쟁이라도 하듯 고압적 자세로 위협해 미처 그물을 건질 수 없었다" 고 울먹였다.

한.일어업협정 발효후 입어 (入漁) 조건 등에 대한 실무협상이 결렬되는 바람에 어민 등 수산업계가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날 어선 3백36척이 EEZ안에 설치한 어구 50억원어치를 챙기지 못하고 철수했으며, 남해.동해안 일대에 줄잡아 6백여척이 출어를 중단했다.

수산업계는 이번 EEZ 발효로 최소한 연간 5천억원 이상 피해가 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부산 대형선망수협 千금석 조합장은 "1~5월까지 쓰시마 인근 해역에서 고등어.정어리 중심어장이 형성되는 점을 감안할 때 어장 폐쇄로 통당 (1통은 4~6척을 구성) 하루 1억원의 조업손실이 예상된다" 고 말했다.

남해안에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장어잡이 등 통발어선이 밀집한 통영지역. 그동안 1백20여척의 통발어선들은 쓰시마 남서쪽 해역에서 장어.꽃게 등을 잡아 연간 5천억원대의 어획고를 올렸으나 실무협상 결렬로 어획고가 연간 1천억원대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徐원열 근해통발수협장은 "전체 어획고의 80% 이상을 차지해온 일본 해역내 조업이 중단되면 통발어업의 기반이 무너질 것이 뻔하다" 며 걱정했다.

또 대부분 20여t 안팎인 부산근해 채낚기 활오징어협회 소속 영세어선 50여척도 성어기인 쓰시마 인근 어장에서 모두 철수,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다.

포항.숙초 등 동해안 일대에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일본 근해서 대게와 가자미.골뱅이 등을 잡아온 자망과 통발어선. 특히 대게는 그동안 90% 이상을 일본측 EEZ 오키군도 등지에서 잡아왔다.

지난 해부터 대게를 잡아온 명성호 (38t급) 선주 이상로 (李相露.37.영덕군강구면삼사리) 씨는 "4천여만원을 들여 대게잡이 그물을 샀는데 걱정" 이라며 "바다를 빼앗겼으니 어디서 고기를 잡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고 말했다.

속초지구 대형 채낚기협회 李종수 전무는 "동해안 어민들은 오징어의 주어장인 대화퇴 어장을 절반이나 잃게 됐다" 며 "어장에 비해 어선수가 많은 채낚기 어선의 경우 연차적으로 줄이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부산.포항.통영 = 손용태.송의호.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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