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위해 동물희생 독성실험 줄이는 연구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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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해 11월 7일 정오. 서울은평구불광동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동물연구실 뒷동산의 위령탑 앞에 1백50여명의 연구원들과 안전청 관계자들이 모였다.

위령탑 앞에 놓인 상에는 고구마와 사료를 차려놓고 촛불도 양쪽에 켰다.

이날 제사는 사람에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지난 1년동안 각종 독성실험에서 희생된 6만마리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는 자리. 해마다 연말이면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쓰는 각 연구소에서는 잇따라 위령제나 수헌제 (獸獻祭)가 열린다.

인간에게 필요한 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동물들을 위로하고 과학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의 죄의식을 씻어주려는 동양적인 행사다.

동물실험의 단골 희생자는 생쥐 같은 설치류. 독성에 인체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데다 비용이 다른 동물보다 저렴하고 크기가 작아 관리가 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설치류만 한해 미국은 3천만마리, 일본은 2천만마리가 희생되고 있다.

쥐에 대한 독성실험을 거친 다음에는 개나 토끼 같은 포유류가 희생된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특성을 가진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직전에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워낙 고가여서 엄두도 내지 못한다.

최근 들어 실험으로 희생되는 동물의 수를 줄이고 대체방법을 찾는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서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실험동물의 수가 70년대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약물의 치사량을 결정하기 위해 2백마리의 동물실험 자료를 요구해 왔던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도 최근 그 수를 18마리로 대폭 줄였다.

국내에서도 동물실험을 줄이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한 예로 동물들이 일정 용량 이상의 약을 복용해 절반이 죽는 양을 찾아내는 '급성독성연구' 는 지난해부터 법적 요구량이 50마리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조직배양이나 장기의 세포배양법을 써서 희생동물을 줄이기도 한다.

간과 뇌의 조직배양을 이용한 독성테스트라든지 동물을 희생해 백신을 만들어내는 방법 대신 세포배양으로 필수 성분을 얻는 것이 그것. 네덜란드에서는 소아마비 백신을 만드는데 70년대만 해도 매년 5천마리의 원숭이가 희생됐지만 요즘에는 신장세포 배양으로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다.

국내에서도 발암물질 실험때 살모넬라균 같은 미생물을 쓰고 세포배양으로 면역독성 실험을 하는 정도는 일반화 돼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생식독성과 한순영 (韓順英) 연구관은 "임산부가 약을 복용했을 때 태아에게 미치는 독성실험도 임신한 지 8~10일 된 쥐나 개로부터 자궁을 꺼내 몇 단계를 거쳐 배자 (수정된 지 15일 이내) 를 얻어 활용, 희생동물 수를 줄이고 있다" 고 말했다.

한 동물에서 20마리 정도를 얻을 수 있어 시약도 적게 들고 동물 수도 20분의1로 줄일 수 있다는 것. 진짜 동물 대신 일종의 시뮬레이션으로 임상실험을 대신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멀티케이스사와 피츠버그대의 연구팀은 미국식품의약청 (FDA) 등이 지금까지 수백 종의 동물연구로부터 얻어낸 각종 독성 데이터베이스를 체계화해 현재 개발중인 신물질의 화학성분을 입력해 독성 유무를 컴퓨터로 판별해 내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연구팀은 "2년내 상용화가 가능하다" 고 자신한다.

동물 대신 식물에서 세포조직을 꺼내 쓰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미 존스홉킨스의대 케빈 월리 박사팀은 콩에서 2형 헤르페스 바이러스의 항체를 추출하는 연구에 성공했다고 미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동물을 이용한 각종 실험은 아직까지는 피할 수 없는 필요악. 한국화학연구소 안전성연구센터 한상섭 (韓相燮) 박사는 "약이나 독성물질이 인체에서 나타내는 반응은 단순하지 않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서도 만일 있을 지도 모르는 독성을 알아내려고 소규모나마 동물실험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인간들의 장수와 건강을 위해 적어도 수십년 간은 동물들의 희생이 계속될 듯하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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