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66> 미운 오리 새끼와 백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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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1: ‘미운 오리 새끼’가 있었죠. 모두가 그를 “오리!”라고 불렀습니다. 자신도 철석같이 “나는 오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오리처럼 걷고, 오리처럼 헤엄치고, 오리처럼 소리를 냈죠. ‘꽥! 꽥! 꽥! 꽥!’ 그렇게 세월이 흘렀죠. 그런데 자라면서 ‘미운 오리 새끼’에겐 물음이 하나 생겼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진정 무엇일까?” 물음은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그러다 하늘을 날아가는 한 무리의 백조 떼를 보게 됐죠. 미운 오리 새끼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들은 대체 누구일까? 어떻게 하늘을 나는 거지?” 그러면서 자신의 겨드랑이에 붙어있는 날개를 봤죠. “왜 저들은 날고, 나는 못 나는 거지?” 물음은 더욱 강하게 올라왔습니다. 오리는 그걸 깊이, 아주 깊이 물었죠.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죠. “아하! 나는 본래 오리가 아니구나. 나는 백조구나.” 그 순간, 그는 날개를 펼쳤죠. 그리고 힘껏 퍼덕였죠. 미운 오리 새끼는 저 푸른 창공을 날기 시작했습니다.

#풍경2: 사람들은 말하죠. “그건 ‘미운 오리 새끼’ 얘기잖아? 그는 본래부터 ‘오리’가 아니라 ‘백조’였다고. 우리와 다르다니까. 우린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진짜 오리 새끼’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못을 박습니다. “나는 날 수가 없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꽥! 꽥! 꽥!’하고 오리 소리밖에 낼 수가 없어. 왜냐고? 나는 정말 오리니까.”

과연 그럴까요? ‘백조들’의 대답은 다릅니다. 그들의 주장은 파격적이죠. “세상의 모든 오리가 실은 백조다!”라고 외칩니다. 그런 ‘백조’가 누구냐고요? 2500년 전에 살았던 고타마 붓다죠. 1600년 전에 깨달음을 얻었던 중국의 육조 혜능 대사입니다. 그들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말했죠. “여러분은 본래 부처다. 세상의 모든 중생은 본래 부처다.” 바꿔 말하면 “여러분은 본래 백조다. 세상의 모든 오리가 본래 백조다”란 겁니다.

그럼 의문이 생기죠. “내가 정말 백조라면, 나는 왜 ‘꽥! 꽥! 꽥!’하고 오리 소리를 낼까?” “내가 정말 백조라면, 나의 날개로 왜 하늘을 날지 못하는 걸까?” “내가 정말 ‘부처’라면, 나는 왜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을 내고, 번뇌를 일으킬까?” 그러고는 투덜대죠. “그러니 못 믿겠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길 대체 어떻게 믿겠어?”

‘백조들’은 이 물음에도 답을 합니다. “우리 안에는 무한한 에너지가 있다. 누구나 그걸 뽑아서 쓰는 거다. 오리는 오리의 에너지로 바꿔서 쓰고, 참새는 참새의 에너지로 바꿔서 쓴다. 그래서 오리는 ‘꽥! 꽥!’하고, 참새는 ‘짹! 짹!’하는 거다. 그러니 오리도, 참새도 이미 ‘부처의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거다. 다만 ‘나는 오리다’ ‘나는 참새다’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못 박았기에, 스스로 울타리를 쳤기에 ‘딱 그 만큼의 에너지’만 쓸 수 있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백조는 그 울타리를 걷었기에 하늘을 날았던 겁니다. 그러니 오리 따로, 백조 따로가 아니죠. 중생 따로, 부처 따로가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이 보이네요. “나는 오리다” “나는 참새다”하며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를 걷어내는 거죠.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내게 저런 능력은 없어” “세상은 이래야만 돼”라고 하는 고정된 틀을 내려놓는 거죠.

그럼 무엇이 남을까요? 그렇습니다. 내 안에 있는 무한한 에너지만 남는 거죠. 그걸 우린 마음껏 뽑아서, 마음껏 쓰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고정된 생각은 항상 에너지를 막는 장벽이 됩니다. 그래서 장벽을 허무는 겁니다. 장벽을 완전히 무너뜨렸던 붓다는 45년간 그 에너지를 뽑아서 마음껏 설법을 했던 거죠. 천민에서 왕족까지 어떤 상대가 찾아와도 붓다는 상대에게 맞는 법문을 했죠. 오리가 필요하면 오리 소리를 내고, 참새가 필요하면 참새 소리를 내고, 백조가 필요하면 백조 소리를 냈던 겁니다. 그게 ‘부처의 에너지’입니다. 그런 에너지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언제부터? 본래부터!

보세요. 우리의 옆구리에 붙은 날개는 ‘죽은 날개’가 아닙니다. 퍼드덕, 퍼드덕, 어디로든 날 수 있는 날개입니다. 다만 “나는 오리다” “나는 참새다”라는 고정된 생각만 놓으면 되는 거죠.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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