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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개헌 등 3대 개혁, 대통령과 여야대표가 이끌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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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개헌과 선거구제·행정구역 개편은 국가의 틀을 바꾸는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과제가 논의되는 모양새가 체계적이지 못하고 어지럽다. 국민 입장에서는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작업을 추진할 진정성이 있는지, 지금 같은 분열적인 정치구조에서 이 일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우리는 선진국의 틀을 갖추는 데 가장 긴요한 개혁은 개헌이라고 강조해 왔다. 고비용 저효율 등 현행 헌법이 지닌 구조적 결함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헌법자문위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제안하는 최종보고서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김 의장은 어제 “개헌이야말로 지역주의 해소와 국민통합을 위한 근원적 처방”이라고 말했다. 개헌안이 성숙하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9월 정기국회에서 개헌특위를 만들자고 야당에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얼마나 무게가 실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권 핵심부는 그동안 개헌론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교감이 어느 정도나 무르익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지나치게 자주 치르는 선거의 문제점을 언급했고 청와대는 필요하면 개헌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권력구조 개편 등 가장 중요한 개헌 사항에 관해선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차기 주자 여론조사 1위인 박근혜 전 대표가 어떤 생각인지도 중요한 변수다. 민주당은 개헌의 필요성에는 원칙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미디어법 문제 등을 걸어 개헌 논의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선거구제 개편은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지금의 소선거구제(1구1인제)를 중·대선거구나 권역별 비례대표로 바꾸는 것이 중심이다. 그런데 이 과제도 분란이 많다. 대통령은 ‘이익의 양보’를 주문했지만 한나라당 내에선 ‘이익의 후퇴’를 의식해 시큰둥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행정구역 개편도 국회에 특위가 있지만 개점휴업이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선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는 힘들다는 소극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는 지역·정파적 갈등을 줄여 보자는 ‘통합’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국가의 틀을 선진적으로 개조하는 데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통합을 향한 개조’ 작업은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대통령이 여야대표들과 만나 먼저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가 신속하고 정교하게 실무작업을 추진하는 게 효율적이다. 국회의원들과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근시안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들에게 맡겨선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조속히 만나 추진할 것인지 말 건지, 추진한다면 어떤 방향인지, 합의된 큰 그림의 로드맵부터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