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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1년 언니, 동생 구하고 숨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여덟살 난 언니가 차에 치일 위기에 처한 다섯살짜리 여동생을 구한 뒤 자신은 트럭에 깔려 숨졌다.

18일 오후 4시20분쯤 서울강서구등촌3동 부영아파트104동 앞 주차장. 이 아파트에 사는 곽찬정 (43.무직) 씨의 1남2녀중 장녀인 수연 (8.등양초등1년) 양은 동생 재은 (5) 양의 손을 잡고 어머니의 심부름을 가던 길이었다.

천진난만하게 동생과 길을 건너던 수연양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주위를 한번 살폈다.

순간 수연양의 눈에 바로 뒤편에서 후진해오는 1t 냉동트럭이 들어왔다.

이때 수연양은 "재은아!" 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힘껏 동생을 밀쳐냈으나 자신은 머리를 트럭 뒷부분에 부딪히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트럭 뒷바퀴는 멈출줄 모르고 수연양의 가냘픈 몸을 덮쳤다.

주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운전자에게 손짓을 해대자 그제야 트럭은 멈췄다.

운전자 이장원 (李張源.30) 씨가 차 밖으로 나왔을 때 수연양은 다리가 오른쪽 뒷바퀴에 끼인 채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달려들어 차를 들어올리려 했지만 짐이 실린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주민은 "큰애가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순식간에 동생을 밀어내는 장면을 보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고 사고 순간을 말했다.

언니가 밀치는 힘에 넘어져 팔과 다리에 가벼운 타박상만 입은 재은양은 놀라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출동한 119 대원들은 에어백장치를 이용해 5분만에 차의 뒷바퀴를 들어올리고 수연양을 끌어냈다.

하지만 수연양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머리에선 계속 피가 흐르고 바지에는 차바퀴에 짓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된 수연양은 결국 오후 8시30분쯤 동생을 세상에 남겨놓은 채 눈을 감았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수연양의 아버지는 "그렇게 다정하던 자매가 이런 모습으로 헤어지다니…" 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어머니 서정옥 (37) 씨는 "겨울방학하면서 성실상을 타고 그렇게 좋아했어요. 결혼뒤 5년만에 어렵게 낳은 자식인데…" 라며 울먹였다.

운전사 李씨는 경찰에서 "30m 가량 떨어진 상가에서 주문한 물건을 내려놓고 돌아가기 위해 차를 후진시키고 있었다" 며 "어린아이가 뒤에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고 말했다.

김기찬.박신홍.배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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