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 첫날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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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 막을 연 경제청문회는 여당 단독 개최의 한계 속에서도 긴장감속에 진행됐다.

경제정책의 지휘본부격인 재경부를 상대로 한 탓에 '관계기관 보고' 가 아닌 증인신문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재경부가 책임규명보다 환란 당시의 옛 재경원 감싸기에 급급하고 있다" 는 위원들의 성토수위가 높았다.

기아.한보사태에 대한 보고를 뒤로 미루자는 간사합의가 회의장에서 뒤집히고, 계획에 없던 위원들의 5분 중간질문 순서가 끼어드는 등 형식면에서는 미숙함도 드러났다.

청문회에 쏠린 관심을 반영하듯 회의장인 국회 501호 회의실엔 2백여명의 내외신 취재진.재경부 직원에 '감시원' 을 자청한 시민단체 관계자들까지 가세, 북새통을 이뤘다.

○ …회의에선 국민회의와 자민련 위원들간에 호흡 불일치가 자주 목격돼 전날 '내각제 논의 연기발언' 으로 빚어진 양당간 신경전을 반영. 먼저 청문회 개회시간을 놓고 혼선이 빚어졌다.

오전 10시로 잡혀 있던 청문회 개회를 자민련측이 같은 시간 열린 3당 총무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오후 2시) 로 미루자고 전격 제안한 것. 그러나 국민회의 한화갑 총무와 자민련 이양희 (李良熙) 수석부총무가 10시 개회 합의를 재확인함으로써 회의는 예정대로 열렸다.

자민련측이 오전 기관보고를 오후로 늦춤으로써 청와대의 내각제 지연 발언에 대한 '몽니 (심술)' 를 시도했다는 후문. 자민련 위원들은 또 임창열 (林昌烈.경기지사) 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 양당간 증인문제에 대한 시각차를 다시 드러냈다.

자민련 위원들은 "林전부총리가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의 뜻과 달리 IMF 구제금융신청을 11월 21일로 늦췄다면 문제" (金七煥 의원) , "강경식 (姜慶植) 전 부총리의 11월 19일 기자회견문에 'IMF 구제금융 신청방침' 이 들어 있었는지 밝혀라" (鄭宇澤 의원) 며 林전부총리 관련부분에 공세 초점을 맞췄다.

반면 국민회의 의원들은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해 대조를 이뤘다.

○ …이규성 재경장관의 소극적 '방어' 자세에 대한 질책도 쏟아졌다.

李장관이 인사말에서 "경제정책 운용의 책임은 정부에 있고 그 중심에 재경부가 있다" 며 재경부의 환란책임을 두루뭉수리하게 표현한 것은 위원들의 불만을 샀다.

자민련 정우택 의원은 "인사말에 당연히 포함돼야 할 '책임통감' 표현이 없다" 며 꼬집었다.

李장관은 "환란 당시 관련자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고 말했으나, 이들 중 상당수가 승진한 상태여서 빈축을 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李장관이 기아사태.종금사 문제 등 어렵고 민감한 질문들이 많이 쏟아져 일방적인 공세에 몰렸으면서도 요령있게 소화해냈다고 평가.

국민회의 이윤수 (李允洙) 의원은 재경부가 제출한 자료가 부실하다며 "이따위 보고서를 만든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고 관계 공무원들을 일으켜세우기도 했다.

李장관은 의원들의 힐난속에서도 과거의 경제기획원.재무부를 감싸가면서 차분한 어조로 답변.

○…청문회 개회 인사말을 통해 장재식 (張在植) 위원장은 "경제파탄의 원인과 책임소재 규명을 통해 경제현실을 수수방관한 직무유기적 처사와 권력형 비리를 철저히 파헤치겠다" 고 다짐. 회의 초반 재경부의 '책임 회피성' 발언이 줄을 잇자 張위원장은 직접 나서 추궁했다.

그는 "재경부의 외환관리 실패가 환란의 제1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재경부가 이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며 "내가 위원장만 아니라면 청문회를 당장 중단시켰을 것" 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張위원장은 18일 오전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보복적 청문회란 인상을 주지 않도록 청문회를 잘해야 한다" 는 전화주문을 받았다는 전언.

○…李장관은 김대중대통령의 경제 파악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金대통령은 재경부가 일일이 보고하지 않아도 언론 등을 통한 나름의 방법으로 경제상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 면서 "지도자는 그래야 한다" 고 언급. 李장관은 金전대통령에게 국가 부도 가능성을 재경원이 공식 보고한 적이 없다면서 이같이 말해 金전대통령과 金대통령을 자연스럽게 비교한 셈이 됐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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