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클리닉] ADHD치료제는 공부 잘하는 약도 마약도 아니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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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보고 인터넷 검색해 보니 제 아이 증상과 똑같아서요.”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하니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말씀드렸더니 검사가 필요 없다며 휭 하니 나가버렸다.

이런 일은 클리닉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다. 심한 경우 하루에 4~5명 정도의 어머니가 이런 식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특히 시험기간이나 언론에서 ADHD 관련 보도라도 나간 다음 날에는 더하다.

그런데 ADHD 치료제가 가끔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ADHD로 판명된 학생이 치료제로 약을 먹은 후 집중력이 좋아지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면 주변 친구와 친구 어머니들이 놀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돌변한 이유에 대해 알아본 끝에 ADHD 치료제를 먹는다는 말을 듣고는 그 약을 ‘공부 잘하는 약’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ADHD 치료제는 ADHD를 겪고 있는 학생에게만 도움이 될 뿐 그렇지 않은 학생에게는 부작용만 일으킨다. 최근 외국인 강사들이 자신이 성인 ADHD라며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과량 투여한 다음, 환각증상으로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연행된 일이 바로 그런 단면이다.

반면 거꾸로 꼭 약이 필요한데도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S군(중2) 어머니가 그런 경우다. 약을 쓰면서 부수적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에 펄쩍 뛴다. “아니, 내 아이에게 마약을 먹이시려고요? 그건 절대 안 돼요. 약 안 쓰는 다른 데서 치료받을랍니다.” 그 역시 내 방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30대 주부는 필요 없는 약을 ‘공부 잘 하는 약’으로 착각해 자녀에게 먹이려 들고, 꼭 먹어야 하는 S군은 어머니가 치료제를 먹이지 않겠단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S군 어머니처럼 약을 거부하는 분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①한창 자라는 시기에 약을 먹으면 식욕이 줄어 키가 안 크면 어떻게 하나? ②중독성이 있거나 뇌에 무슨 나쁜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③먹을 때만 반짝 효과가 있다가 끊으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이런 내용들은 물론 모두 사실이 아니다.

약에 대한 오해뿐이랴! ADHD에 대해 일반인이 흔히 갖는 편견도 많다. ①정신만 차리면 집중할 수 있다. ②나이 들면 좋아진다. ③부모가 양육을 잘못해서 그렇다. ④교사 및 교육환경의 문제 때문이다. ⑤임신 중 음식이나 약을 잘못 먹어서 그렇다. 역시 모두 잘못된 내용이다.

자녀가 ADHD라고 하면 부모 중 대부분은 죄책감을 느끼는 듯하다. 모두 부모들의 탓으로 돌려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내 아이가 IVY 리그에 들어간 건 다 내 덕이에요”라고 말하는 팔불출 엄마와 뭐가 다른가.

마지막으로 ADHD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 땅에 ADHD 자녀를 둔 부모들은 죄인이 아니고 무엇보다 ADHD는 완치할 수 있는 병이니, 죄책감을 뒤로 하고 파이팅을 외치라고.

정찬호(43)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마음누리/정찬호 학습클리닉 원장
▶중앙대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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