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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비리사슬]하.'전관예우'고리 끊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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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이토록 싸늘하다니…. " 올해로 법관 생활 10년째인 대법원의 한 중견판사의 푸념이다.

사회정의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할 법조계가 이제는 세간의 비난 대상이 돼버린 불행한 현실. 걸핏하면 터져나오는 법조비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척결될 수 있을까. 상당수 법조계 인사들은 '왜곡된 수임구조' 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전문성과 상관없이 전관예우 (前官禮遇)에만 매달리는 의뢰인들, 법조계 내부의 정실 (情實) 주의, 그리고 변호사업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몰고온 브로커의 활개. 이같은 구조적 악순환을 뿌리뽑기 위해선 무엇보다 전관예우 방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유중원 (柳重遠) 변호사는 "비리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강화로는 부족하다" 며 "지난해 변호사법 개정 작업 때 논의됐던 판.검사 출신의 일정기간 형사사건 수임 제한규정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고 말했다.

일부에선 위헌시비의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공무원들의 경우 유관 또는 산하기관에 퇴임후 2년간은 취업을 못하게 하는 제도가 이미 시행중이다.

국선변호인 제도를 대폭 활성화하라는 의견도 많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일본에선 국선변호 사건이 전체 형사사건중 평균 60~70%를 차지한다.

행정처 관계자는 "일본도 70년대 초까지는 우리와 비슷했지만 93년 국선변호 기본료가 현실화하고 변론횟수 등 성실도에 따라 재판장이 수임료를 증액할 수 있도록 한 뒤 크게 활성화됐다" 고 말했다.

한택근 (韓澤根) 변호사는 당직변호사제도의 대폭 활성화를 제안했다.

2천여명의 변호사가 소속된 서울지방변호사회에는 현재 희망자에 한해 임명되는 국선변호인과 당직변호사가 각각 4백여명에 불과해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변호사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브로커의 개입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韓寅燮) 교수는 "법조계가 폐쇄적 영역에 머물면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만큼 경쟁체제가 도입되고 거래가 투명해져야 한다" 며 "매년 수임 현황과 수임 결과가 공개돼 의뢰인이 어떤 변호사가 어느 분야에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고 말했다.

서울변호사회 간부도 "법조타운 곳곳에 변호사 안내시스템이 도입되고 변호사 광고도 자유롭게 허용돼야 한다" 고 말했다.

제도개선에 앞서 법조인은 물론 사건을 의뢰하는 일반시민들의 의식개혁도 시급하다.

개업을 앞둔 사법연수원 2년차 李모씨는 "변호사들이 급박한 처지의 피의자를 상대로 하는 형사사건에서 큰 돈을 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사회의 지배계층이란 권위의식에서 탈피, 국민이 필요로 하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집단으로 재탄생하는 것이야말로 법조인들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발점" 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친지들로부터 변호사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유능하다고 알려진 몇몇 변호사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이상하게 취급받는 게 우리의 현실" 이라며 "사건의 내용이나 경중 (輕重) 은 무시한 채 무조건 사건담당 판.검사와 친분있는 변호사를 찾으려는 시민들의 행태도 고쳐져야 한다" 고 지적했다.

김정욱.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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