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야 '과거'들춰 청문회 압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경제청문회가 마침내 정치권에 '태풍의 눈' 으로 등장했다.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이 12일 "경제청문회에서 과거 정권의 불법.비리를 밝혀내겠다" 고 폭발성 있는 발언을 하면서부터다.

특히 야권은 국민회의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리 추적 방침을 공식화하자 예상했던 대로 'YS잡기 청문회' 가 될 것으로 보고 반발하고 있다.

국민회의 수뇌부의 "경제청문회는 정책청문회가 될 것" 이라는 기존 입장과는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당초 국민회의는 특정인을 불러 비리를 캐고 단죄하기보다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교훈을 얻기 위해 열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런데 청문회 개시 불과 수일 전에 갑작스럽게 청문회 운영의 목표와 원칙이 달라진 것이다.

趙대행은 이날 아침 서울 여의도 한 설렁탕집에서 이런 얘기를 한 데 이어 당사 집무실에서도 기자들에게 같은 요지의 발언을 했다.

우연히 흘러나오거나 실수로 말한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되고 파장을 계산한 '계획된 발언' 이라는 의미다.

趙대행이 이같은 강경발언을 하고 나선 데는 여러가지 노림수가 있는 듯하다.

우선 의안 변칙처리에 반발해 장외투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나라당의 전의 (戰意) 를 꺾으려는 맞불작전 성격이 있다.

국민의 시선을 '국회 529호실 사태' 로 야기된 안기부의 정치사찰 의혹에서 청문회쪽으로 끌어보자는 것이다.

정국 주도권을 여당이 확실하게 장악하겠다는 의미다.

또 그의 발언은 야당 압박용이기도 하다.

YS를 둘러싼 비리설이 점점 윤곽을 드러내면 한나라당이 청문회에 불참할 명분도 약해진다는 점을 노리고 있다.

무엇보다 趙대행 발언의 핵심적 메시지는 金전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최근 현정권을 향해 잇따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자기 방어를 위한 정치적 움직임을 재개하려는 YS에 대해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회의 관계자들은 "청문회에서 YS의 비리의혹을 파헤치는 데 주력할 것" 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민회의는 한보사태 담당으로 기존 김원길.김민석 (金民錫) 의원 외에 장성원 의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 칼을 갈고 있다.

趙대행은 일반론임을 전제로 하긴 했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비리가 있다" 고 밝혀 YS측을 바짝 긴장시켰다.

김원길 정책위의장도 "YS를 직접 불러 강하게 다뤄야 한다" 며 "여론을 통해 출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고 가세했다.

장기적으로는 일단 경제청문회가 'YS청문회' 로 진행 되면 필연적으로 한나라당내 민주계와 비민주계의 갈등이 격화될 것이라는 게 여당측 분석이다.

이는 여권의 정계개편 구도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국민회의의 'YS청문회' 카드는 국민적 관심을 끌어 모으고 한나라당의 청문회 참여를 압박한 뒤 내분을 유발하기 위한 다목적 카드인 셈이다.

이하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