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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 10일]새로운 기축통화 합격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유럽 11개국 단일통화인 유로가 세계 금융시장에 선보인지 열흘이 지났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새로운 기축통화 탄생' 에 대한 시장의 흥분과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것. 유로 출범 10일과 향후 진로를 점검해 본다.

유로의 지난 1주일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단 '합격점' 을 매기고 있다.

시장 관계자들도 위험과 불안이 따를 수밖에 없는 역사상 초유의 대실험에서 그만하면 첫 단계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4일 유로가 세계 금융시장에 데뷔한 뒤 유럽중앙은행 (ECB) 과 11개국 금융기관간 결제시스템이 별 무리없이 작동되는 등 우려됐던 거래상의 문제점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유로는 첫날부터 강세로 출발했다.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들이 달러보유 비중을 줄이는 대신 유로화 매입에 적극 나서며 지난 4일 한때 유로당 1.19달러까지 치솟았다.

유럽 11개국 증시도 일제히 폭등세를 보여 1주일간 파리와 프랑크푸르트 증시가 7.7%, 7.3%씩 올라 유로 출범에 따른 '축하장세' 를 실감케 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은 아직 별다른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유로 표시 수표로 결제할 경우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는 데 대해 시민들은 "안쓰면 그만 아니냐" 는 반응이다.

일상생활에서의 본격적인 변화는 3년 뒤에나 나타나게 돼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시민들은 들뜬 분위기에서 지난 열흘을 보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로의 성공적 출발에 대해 "순산 (順産) ,가족 모두가 행복하다" 고 평했다.

강세를 보이던 유로화는 그러나 지난 8일 1.15달러대까지 떨어졌고, 유럽 각국은 이를 계기로 냉엄한 경제현실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됐다.

유로화의 하락은 이날 동시에 발표된 미국과 독일의 대조적 실업통계가 직접적 요인이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실업률은 28년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반면 독일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4백만명선을 다시 넘어섰다.

독일경제연구소 (DIW)가 올해 독일의 성장률 예상치를 2.3%에서 1.4%로 수정한 것도 약세요인으로 작용했다.

유로랜드 전체의 성장률도 지난해 3%에서 올해는 2%로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업률도 지난해 말 10.8%에서 올해 말에는 11%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로 출범을 전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고용.복지개혁.경제정책 조화 등 경제현안에 대한 논의가 유럽 각국에서 시작되면서 유로 가치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빔 도이센베르흐 ECB 총재는 "유로가 강세로 출발해 행복했고, 약화돼 마찬가지로 행복했다" 고 선문답을 던졌다.

유로 약세가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고 지극히 정상적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기준금리 3%도 당분간 유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로 약세가 지속되면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연초부터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브라질.러시아 경제 때문에 '믿을 건 역시 달러뿐' 이라는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면 그 시기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유로의 가치가 장기적으로 어떤 수준이 될지 가늠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시기상조다.

현재 국제 금융계는 그보다 유로의 변동폭에 더 주목하고 있다.

금융계는 지난 1주일간 유로가 약 0.04달러의 변동폭을 보임으로써 과거 마르크화의 변동폭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데 만족해 하고 있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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