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논란의 중심’ 이재오 100분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나라당 이재오 전 원내대표. 그동안 정치적 행보를 삼가고 말도 아꼈던 그가 24일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이었다. “최근 본격적으로 인터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고 말한 그는 1시간40분 동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관계를 비롯, 정치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태도로 입장을 밝혔다.

이재오 전 의원이 인터뷰 도중 “실세인데도 백수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활짝 웃고 있다. 그에게 “청탁을 많이 받지 않느냐”고 했더니 “양심을 걸고 말하는데 어떤 청탁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대꾸했다. [김도훈 인턴기자]


오전 5시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 자전거로 약 4시간 동안 지역구(서울 은평을)를 돌고 목욕탕에 다녀온 그를 구산동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아침밥부터 좀 먹자”고 하더니 약 5분 만에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식탁엔 조기 한 마리, 깻잎절임, 생고추, 김치와 된장국이 놓여 있었다. 부인 추영례씨는 “이 양반은 된장국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은 “우리 집 소파가 좁다”며 마룻마닥에 주저앉은 다음 인터뷰를 시작했다.

전날 북한 조문단의 청와대 면담을 염두에 둔 듯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북한이 핵 문제를 의제로 올려야 한다”고 운을 뗐다. “핵 문제를 제쳐 두고 경제협력 등 다른 의제만 다루겠다고 한다면 정상회담이 열리기 어렵다”고 했다. “핵 문제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 진정한 교류협력을 할 수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관계가 나쁜 박 전 대표에 대해선 “같은 서울 하늘 밑에서 살고 있고, 원수 사이도 아닌데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가 오늘 대통령 특사로 유럽 순방을 시작한 만큼 이번을 계기로 대통령과의 사이에 신뢰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한 다음 10개월간 머물던 워싱턴에서 올 3월 귀국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을 몇 번 만났나.

“그건 비밀이다.”

-백수인 셈인데 대통령이 안타까워하지 않나.

“백수는 아니고 지금 교수(중앙대 객원교수)로 있다. 대통령과는 가끔 전화한다. 중요 정책과 관련해 대통령과 오랫동안 생각을 나눴다. 우린 서로의 생각을 잘 안다.”

-앞으로 남북 관계엔 변화가 생길 걸로 보나.

“이 대통령이 북한의 고위 당국자를 만난 건 처음이다.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얘기했을 것이다. 북한 대표단도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무조건 반북(反北)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정권의 실세인데 북한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나.

“그게 가능한 시기가 온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북한 당국자들에게 우리의 생각이 뭔지 알리고 싶다. 그러나 과거처럼 북한에 돈을 주고 대화하는 건 끝내야 한다.”

-대통령 특사로 북한에 가는 것 아닌가.

“그런 상황이 온다면 대통령의 생각을 (북한에) 충실히 전달하겠다.”

-‘박근혜 전 대표가 당에 들어와 함께 협력하자고 말하기 전에는 당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는데.

“표현 자체는 잘못 전달된 거다. (10월의) 양산 재선거에 나가는 박희태 대표가 당직을 사퇴할 경우 한 자리 비게 되는 최고위원을 나보고 하라고 당이 한뜻으로 권한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내가 가는 걸 놓고 (친박계가) 또 하나의 갈등 고리로 삼겠다고 한다면 당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김대중(DJ) 전 대통령 서거 전 화해를 했다. 먼저 박 전 대표에게 화해를 제의할 생각은 없나.

“그럴 생각도 있다. 나도 개인적으로 가까운 친박계 의원과 자주 전화하고 만나기도 한다. 내가 화해를 하자고 얘기하면 그걸 내 진정이라고 받아 줘야 하는데 그걸 제스처로 본다면 말 안 하는 것만 못 하다. 그럴 생각은 얼마든지 갖고 있다.”

-워싱턴에서 귀국한 지 5개월이 지났는데 박 전 대표와는 왜 만나지 못했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아 그랬는데 때가 되면 만나지 않겠나. 정치라는 건 다른 의견도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내각 개편 때 장관으로 간다는 얘기가 있다.

“개각이 있을 때마다 내가 0순위라는 말들이 돈다. 그러나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라면 오히려 (장관) 자리를 비켜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장관으로 (내각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다. 대통령을 밖에서 돕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통령이 새 총리를 기용할 경우 어떤 분이 적합하다고 보나.

“DJ 서거로 3김의 한 축이 무너졌다. 지금이 지역 통합의 적기 아닌가. 지역 통합을 상징할 수 있는 분이 총리가 되면 좋겠다.”

-지난해 총선 때 왜 졌다고 생각하나.

“(‘허허’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린 뒤) 선거에 지면 원인이 100가지나 된다고 한다. 입 달린 사람마다 진 이유를 얘기하는데 그게 다 맞다. 결론은 내가 좀 부족했다. 여러 원인을 극복할 수 있었는데 내가 좀 소홀했다.”

-23평(약 76㎡)짜리 단독주택에서 30년 넘게 사는데 국회의원을 세 번 했고, 현재 실세인데 왜 이사를 못 했나.

“이 집은 우리 부부 둘이 살기에 충분하다. 이런 집도 없는 서민이 많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시작하나.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신문을 읽는다. 중앙일보가 두 번째로 배달되는데 꼭 읽는다. 월·화·수요일 사흘은 자전거로, 목·금·토요일 사흘은 걸어서 지역을 돈다. 서민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가락시장·노량진시장·경동시장 등에서 장을 봐야 생업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런 그들을 만나려면 나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 내 삶 자체가 서민의 삶이다. 내가 잘살아서 그들과 차이가 난다고 하면 그들이 나에게 진솔한 얘기를 하겠느냐.”

-서민은 무슨 말을 가장 많이 하나.

“정권이 바뀌면 살기 좋아진다고 하더니 그걸 잘 못 느끼겠다고 말한다. 정치인이 잘해야 한다.”

-강성 이미지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인가.

“내가 남 욕하고 화내는 걸 봤느냐. 다만 불의를 볼 때 참지 못하고 정의를 얘기했기 때문에 그런 인상이 박힌 것 같다.”

이상일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이재오(64)=현 정부 출범 당시 ‘정권의 2인자’로 불릴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전직 3선 의원. 이 대통령과는 박정희 정권 시절 6·3 시위(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반대 투쟁)를 했을 때부터 알던 사이다.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 소속으로 등원해 같은 당 의원이던 이 대통령과 한층 가까워졌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이명박 캠프의 선거운동을 지휘하며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도전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지난해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계 학살 공천’ 시비에 휘말렸고,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패배했다. 이후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연구교수로 10개월간 활동했다. 현재 모교인 중앙대 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