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시장 '빅딜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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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 결정으로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의 선두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96년 이후 3년간 최악의 불항을 겪었던 반도체 업체들은 지난해 감산과 구조조정으로 과잉 공급을 어느 정도 해소한데다 작년 하반기부터 수요가 늘고있어 올해 시장 우위 확보를 위한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이와관련, 향후 5년 이내에 현재 11개 이상 난립된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5개 정도로 정리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특히 6개월새 업계 2위 자리가 두번이나 바뀌는 등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삼성과 현대 - LG, 미 마이크론테크놀러지, 일본 NEC를 중심으로 한 선두 경쟁이 관심거리다. 이들 4개사는 세계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상위 업체들의 하위업체 인수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6월 텍사스인스트루먼트를 8억달러에 인수한 마이크론은 보유중이던 인텔 지분 6%를 최근 5억달러에 매각, 고속반도체인 램버스D램 생산에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한국 업체들도 이번 통합 결정을 세계 반도체 가격의 주도권을 잡을 호기로 보고 있다. 이 틈바구니에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것은 일본업체들이다. 일본 최대업체인 NEC는 마이크론에 이어 현대 - LG에도 밀려나면서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업계에서는 NEC가 일본이나 유럽 기업 가운데 파트너를 골라 몸집 불리기를 모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난해 기술 제휴 및 공동 투자 협정을 맺은 마쓰시다와 미쓰비시, 도시바와 후지쓰 등은 본격적인 인수.합병 (M&A) 공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필립스.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지멘스 등도 M&A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현재 10달러 (64메가) 와 2.5달러선 (16메가) 으로 다소 회복한 반도체 가격이 2~3월 비수기를 맞아 다시 하락할 확률이 커 업체간의 M&A와 기술 제휴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들은 LG의 반도체사업 포기에 대해 "한국 정부의 시장 지배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 라고 비판하면서도 "반도체분야 비용절감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계기가 될 것" 으로 평가했다.

또 일본의 반도체업계는 앞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의 과당경쟁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한국의 삼성.현대가 세계 반도체시장의 가격 주도권을 잡게돼 일본 업체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잇다.

아시안월스리트저널은 7일 "LG의 반도체사업 포기는 정부개입에 대한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경제운영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 이라며 "인위적인 통합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가 불확실하다" 고 전망했다.

파이낸설 타임스 (FT) 도 "이번 사례는 한국에서 정부와 불협화음을 가진 기업이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준다" 고 보도했다.

FT는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하지만 연구개발.경영 등의 분야에서 큰 폭의 비용감축 효과가 있을 것" 이라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영국의 BBC와 일간지 더 타임스도 한국의 재벌개혁에 따른 반도체 통합으로 LG가 웨일스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설립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김영훈.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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