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제마의 길''계백'등 역사서 잇단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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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아픔 떨치고 일어나야 될 해다. 우리 민족은 진정 저력이 있는가.

각 분야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한 우리 선조들이 '그래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 며 소설로 살아나고 있다.

소설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인물들은 그속에 이야기를 품고 시대적 교훈과 감동을 쥐고 있어 그 재미를 더한다. 최근 독특한 개성을 지닌 역사 인물들의 장편 소설이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여름 '나폴레옹' '클레오파트라' '징기스칸' 등 외국계 영웅소설 돌풍이 지나간 후 한국 역사인물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형국이다.

'허난설헌' (금토.전2권 각권 7천원) 은 조선여성사를 새롭게 조명한다는 야심으로 쓴 페미니즘적 역사소설이다. 허균의 누이로 동생보다 시격 (詩格) 이 높다는 평을 받는 걸출한 시인이자 유교의 관습에 저항한 이단아 허난설헌. 작가 김신명숙씨는 허난설헌을 '착한여자' 신사임당과 '멋진여자' 황진이에 비교하기를 꺼린다.

이들은 남성들이 만든 여성상에 편입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인물들이라는 것. 대신 저항하는 여성들의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주체성과 욕망을 가진 그녀의 삶에 깊이 천착한다.

허난설헌은 실제 여성의 시작 (詩作) 을 금기시 하던 당시 평생 시쓰기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권위적인 남편의 행위에 반발해 시가의 미움을 산 채 27세에 요절한다.

작가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역사의 한구석에 내버려진 허난설헌의 삶을 여성적인 관점에서 되살려 놓고 있다.

수천년 내려온 한의학 이론을 뒤엎은 사상의학 (四象醫學) 을 창시한 명의 이제마. 그는 인재등용에서 차별받던 동북인에 서얼출신이란 신분의 한계를 안고 태어난 필부였다.

'제마의 길' (중앙M&B.전3권 각권 6천5백원) 은 세월의 질곡속에 울고 웃던 이제마의 삶의 궤적을 끈끈하게 짚고 있는 소설이다. 마흔이 넘어 관리로 등용됐고 그 후 다시 의술에 뛰어드는 과정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의학에 대한 집념에 연결해 이야기로 엮어간다.

작가 전영종씨는 문학적 상상력에 풍부한 이야기를 덧붙임으로 전기문학적 요소와 역사소설의 재미를 함께 획득하고 있다.

소설가 이원호씨의 '계백' (산하.전5권 각7천원) 은 장군으로서 지닌 군주에 대한 충성이 주요 테마. 7세기 동북아시아의 형세와 함께 비운의 왕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용장의 모습이 웅장하고 감동적이다.

계백에 대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빈약한 기록은 중국의 자료나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채워준다. 또 멸망해가는 조국앞에선 인간 계백의 모습도 사실적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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