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대통령 유품 공개] 38년 된 사전, 목이 헐렁한 양말, 옥중 서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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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품 40여 점이 22일 공개됐다. 양복과 셔츠, 지팡이와 구두, 중절모자와 벼루, 최근까지 등받이로 쓰던 쿠션 등이 보인다. [연합뉴스]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휴지를 둘로 갈라 쓰곤 했다. 티슈를 뽑으면 접어서 자르고, 남은 하나는 접어 놓고 반만 썼다. 물과 전기 절약도 남달랐다. “(고향인) 하의도에서 물이 없어서 어렸을 때 물을 많이 길었다고 한다. 물이 소중하다고 하셨다. 전깃불도 방을 나갈 때 끄지 않고 나가면 혼난다. 비서진이 뒤에 있어도 불을 꼭 끄고 나가시는 것이 생활화됐다.”(최경환 비서관)

유족들은 김 전 대통령의 생활 태도를 보여주는 유품 40여 점을 지난 22∼23일 국회에서 공개했다. 추후 전시 일정은 이희호 여사가 정할 예정이다.

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영어사전과 재임 시절부터 사용하던 만년필 등(上). 이희호 여사가 직접 만든 손뜨개 장갑과 양말. [연합뉴스]

유품 중엔 김 전 대통령이 신던 구두와 지팡이가 포함됐다. 모두 쓴 지 10년 가까이 됐다고 한다. 대통령 재임 때부터 쓴 만년필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해외 지인들에게 보내는 친서에는 꼭 만년필로 서명했지만 일기를 쓸 때는 일반 볼펜을 썼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까지도 일본에서 소화 47년(1972년)에 나온 영일사전을 곁에 뒀다. 국내신문뿐 아니라 일본 신문까지 꼼꼼히 읽던 습관 때문이다. 최근까지 등받이로 쓰던 쿠션은 이희호 여사가 대통령 영부인 시절 선물받은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양말은 목이 다 헐렁하다. 15년 전부터 양말 발목 부분의 밴드를 빼고 신었다고 한다. “197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당한 교통사고로 고관절을 다쳐 다리가 많이 붓기 때문”이란 게 비서진의 설명이다. 김 전 대통령은 머리빗을 항상 챙겨 다녔다. 모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산책할 때나 이희호 여사와 경기도 구리 코스모스 밭을 찾을 땐 중절모자를 썼다.

◆꼼꼼한 성향 보여주는 유품들도=김 전 대통령이 80년 청주교도소에 갇혔을 때 가족에게 한 달에 한 번씩 보낸 옥중서신도 공개됐다. 81년 12월 2일자로 이 여사에게 보낸 손바닥만 한 봉함엽서는 깨알 같은 글씨로 1만4000자, 원고지로 70장 분량이 담겼다.

DJ가 76년 3·1구국선언 사건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때 이 여사에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등을 넣어달라”고 책 목록을 적어준 엽서도 함께 공개됐다. ‘연설의 달인’인 그가 자필로 수정한 연설문 원고도 나왔다. 지난해 9월 노르웨이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회의에서 ‘대화의 힘’이란 주제로 연설한 내용이다. DJ는 주최 측이 원하는 주제와 청중의 성향을 파악한 뒤 자료수집·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구술로 초고를 작성했다. 이를 비서들이 문서화하면 다시 3, 4차례 직접 수정한 뒤에야 연설문을 완성했다고 한다.

‘實事求是’(실사구시)나 ‘敬天愛人’(경천애인) 등 사자성어를 직접 써 선물하기를 즐기던 김 전 대통령이 쓰던 붓·벼루·연적·문진 등도 선보였다. 김대중인(金大中印), 후광(後廣·호), 만방일가(萬邦一家·전 세계가 하나의 가족이라는 의미), 행동(行動)하는 양심(良心) 등 그가 써온 낙관도 공개됐다. 이희호 여사가 직접 뜬 양말도 있다. 서거 당시 신고 있던 그 양말이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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