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이홍구 칼럼

미국을 바로 알지 못하는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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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이 시도한 일련의 강수(强手)는 치밀하게 계획된 성공적인 외교공세이기보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성격이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실책이란 것이 대다수 미국 전문가의 판단이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등 북한을 압박하는 국제사회의 반응, 특히 미국의 일관성 있는 대응은 북한의 공격적 도발전략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대미전략 전개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에 대한 이해부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의 성장배경, 성격, 정치철학 등 두 사람의 대조적인 차이점은 그동안 자주 강조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부시는 미국 유수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상원의원인 조부와 대통령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이른바 특권층의 후예인데 비하여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의 유학생과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인도네시아의 양부(養父)밑에서, 고교시절은 하와이의 조부모 밑에서 자란 변두리 계층의 출신이란 차이가 극적인 대조를 이루었다. 물론 부시의 극단적 보수성과 오바마의 전투적 진보성도 쉽게 대치시켜 부각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미국인이란 절대적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북한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두 대통령은 객관적인 차이점을 넘어 그들이 미국인으로서 지닌 원초적인 공통점, 즉 미국식 도덕주의의 가치관과 위기에 쉽게 물러서지 않는 개척자적 근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미국 사회나 문화에 대해 흔히 물질 만능적인 가치관에 기초한 것으로 성격 짓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미국의 경제발전을 가능케 한 실용주의적 측면만을 강조한 편견에서 온 생각이다. 미국인은 본인들의 가치관, 특히 무엇이 정의이며 공정(fair)한가에 대한 기준에 지나칠 정도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부시는 비교적 단순한 가치관에 입각하여 선(善)과 악(惡)을 구별하는 데 주저하지 않은 지도자라 하겠다.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그의 판단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 진보적 가치관을 지닌 오바마가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긴다고 추측한다면 그것은 진정 미국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 데서 오는 실수이며 오해다. 오바마가 인종 간의, 그리고 빈부 간의 차별과 불평등 극복에 전력투구하려는 것은 바로 그것이 미국적 가치와 도덕성을 실현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번에 북한이 범죄자로 선고한 두 미국 여기자를 클린턴에게 넘겨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러한 북한의 결정이 지도자의 아량이나 대미관계 개선을 바라는 호의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인질을 협상용으로 악용하는 부도덕한 체제임을 오바마와 미국인들에게 각인시키는 계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취임 초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듯 핵실험을 비롯한 도발을 택한 북한의 전략도 미국인이 지닌 개척자정신과 오기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범법자의 총 앞에서 벼랑 끝에 몰린 보안관이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서부 개척자의 정신은 아직도 미국의 지도층에 살아 숨쉬고 있다. 취임 후 첫걸음을 내디딘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과 압박에 쉽게 물러서는 정치적 자살행위를 범하리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큰 착각임에 틀림없다. 지난 몇 달의 외교 전초전을 통하여 북한이 미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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