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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파행 안팎]야 실력행사… 사무실 단독조사 강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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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송년 국회는 밤샘농성에서 시작해 손찌검과 몸싸움에 이어 결국 문제의 안기부 직원사무실로 지목된 본청 529호실을 한나라당 의원들이 물리력으로 뚫고 들어가는 실력행사로 치달았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10시쯤 미리 준비한 장비들을 동원, 의원총회 결의에 따라 529호실 문을 부수고 독자적인 현장조사활동을 시작했다.

이에 여당측은 한나라당의 행위는 안기부법 위반이고 형법상 기물파손죄를 면할 수 없다며 강경대응할 뜻을 밝혔다.

여야는 사무실 개방 방식을 놓고 수 차례 협상을 벌인 끝에 문을 열기로 의견접근을 보았으나 다시 뒤집어지는 등 반전이 거듭됐다.

한나라당의 '세밑공세' 는 검찰사정을 야당파괴와 이회창 (李會昌) 총재 죽이기로 인식하는 피해의식에다, 안기부 사찰을 쟁점화해 신년정국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 겹쳐 이뤄졌다는 게 국민회의측 판단이다.

자민련 대전시지부에 대한 검찰수색으로 촉발된 2여 (與) 간의 신경전도 긴장을 더했다.

신년에 전개될 정치권 대격변을 앞두고 3당간에 벌이는 '2인3각' 의 기묘한 흐름이 한눈에 잡히는 국회였다.

◇몸싸움 =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 거의 전원과 당직자 등 3백여명이 본청 5층 정보위원장실과 맞은편 529호실 사이의 복도에 진을 치고 밤 늦게까지 농성을 벌였다.

의원들의 격앙된 분위기 속에 이재오 (李在五) 의원은 "낮 12시까지 사찰실 개방문제가 합의되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문을 열겠다" 고 선언했다. 사무실 문을 강제로 따기 위한 장비가 반입되기도 했다.

오전 11시30분쯤 당직자들이 독자개방을 준비하기 위해 사무실 문앞으로 몰리자 강천구 (姜天求) 국회사무차장과 강영소 (姜英昭) 정보위 수석전문위원 등 국회직원들이 이를 만류했다.

갑자기 "어떤 ×이야" "끌어내" 라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거친 몸싸움으로 돌변했다.

박시균 (朴是均) 의원은 끌려 나가는 姜사무차장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려치기도 했으며 일부 당직자들은 '국회직원 다 나가라' '안기부 직원은 걸리면 가만 안있겠다' 는 원색적인 발언을 했다.

◇여야 협상 = 쟁점은 문서조사 방식에 관한 것. 한때 3당총무 사이에 '개인사물 (안기부 직원수첩 등) 은 복사하지 아니하고 일반서류는 합의하에 복사.공개한다' 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개인사물 열람여부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지루한 대치상황이 지속됐다.

이 합의에 대해선 이종찬 (李鍾贊) 안기부장이 보안장소인 529호실의 개방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력반발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가운데 총무들은 또 한번 모여 3당 수석부총무 등 6인 의원이 사무실에 들어가 문서 등 검증을 하기로 재합의했으나 양당 추인과정에서 번복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나라당측은 문제의 사무실 안에 야당의원에 대한 정치사찰 내용이 담긴 개인수첩이 들어 있다고 주장한 반면, 한화갑 (韓和甲) 국민회의총무는 "일방적인 정치공세로 현장에 몰려 있는 당직자들을 먼저 철수시키라" 고 요구했다.

◇사찰의혹 사무실 = 96년 3월부터 2개월간 1억여원을 투입해 설치됐다.

사무실 벽과 천장엔 3㎜짜리 철판.방음재.도청방지용 구리판으로 세겹의 보안장치가 돼 있다.

전영기.남정호.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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