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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원 사장이 ‘1페이지 보고서’ 주문한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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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한 장짜리 보고서로 제출하라.” 얼마 전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이 4500여 직원에게 지시한 내용이다. 정 사장은 직접 이를 읽고 사업성 있는 아이템을 선정해 해당 제안자에게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기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란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조만간 이 혁신 프로젝트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눈길을 끈 것은 ‘한 장짜리’ 보고서다. 간단한 보고서 하나로 사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솔깃하게 들린다. 아직 뚜껑을 열어 볼 순 없지만 여기에는 기발한 창의성, 사업적인 설득력, 절묘한 스토리 등이 녹아 있을 것이다. 한 장짜리 보고서의 힘이라고 해야 하나.

근무 부서에 따라, 직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직장인들은 보고서에 울고 웃는다. 무엇보다 보고서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요즘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평균 서너 건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한번 준비하는 데 2시간30분을 투자한다. 종이 보고서만 이렇다는 거다. 보고 채널은 다양하다. 전자결재는 기본이고 e-메일, 메신저, 여기에다 문자메시지까지 더해졌다. 핵심은 간결함, 그리고 설득력이다.

삼성이나 LG, 포스코 같은 내로라하는 대기업은 진작부터 ‘보고서 다이어트’를 시행하고 있다. 어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한 장짜리 보고서만 받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또 다른 기업은 아예 신입사원 연수 때부터 보고서 쓰기 교육을 한다. 비즈니스 현장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 처음엔 글자 크기를 작게 하거나 자간을 좁히는 등 ‘꼼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90% 이상 정착 단계라고 한다.

한 장짜리 보고서는 똑똑하면서 경제적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시간 낭비, 비용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또 조직 역량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회의나 보고가 훨씬 간결해지면서 밀도도 높아져서다. 설명이 필요 없는 ‘압축의 미학’이다.

똑똑하면서 경제적인 보고서는 어떻게 작성할까. 삼성은 ‘1매 베스트’ ‘문서 혁신’ 같은 표현을 써 가면서 10여 년 전부터 간결한 보고서 쓰기를 독려하고 있다.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이렇다. ▶하나의 보고서에서는 하나의 주제만 다뤄라 ▶첫 문단, 혹은 첫 장에서 핵심을 찔러라 ▶상사가 선호하는 용어를 적절히 배합하라 ▶오·탈자를 없애 신뢰도를 높여라 ▶내용이 길어지면 요약본을 맨 위에 배치하라 같은 것들이다.

미래경영연구소 이용갑 소장은 이를 ‘현·문·종·세’ ‘결·근·방·기’ 같은 축약어로 제시한다. 요컨대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도출하고, 종류별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과 스케줄을 반영한 세부시행안을 작성하라는 것이다. 또 결론부터 말하라, 근거를 확보하라, 방법에 확신을 가져라, 기대효과를 명확히 하라는 내용이다. 생존경영연구소 서광원 소장은 “여기에 소리 내서 자신이 쓴 보고서를 읽어 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중요한 보고서일수록 세 번 이상 소리 내 읽고 퇴고하는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된다는 얘기다. 일요일 아침, 딱딱한 보고서 대신 신문기사 한 토막을 소리 내 읽어 보는 것도 ‘보고서의 달인’이 되는 데 좋은 코치가 되지 않을까.

이상재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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