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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오자와의 선거 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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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해 1월 오자와는 월간 문예춘추에 기고를 했다. “만년 여당, 만년 야당의 현 구도로는 격변하는 세계에 대응할 수 없다. 만년 여당·야당의 안일과 태만의 구도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대로라면 자민당은 영구 정권이고, 국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영의 양당제는 그의 비전이다. 그 방법론은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한 선거구에서 3~5명 뽑는 중선거구제를 한 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가 한 선거구에서 당선되고, 여당의 파벌끼리 싸우는 중선거구제에서 자민당은 자폐에 빠지고, 야당도 안주한다는 논리다. 오자와는 이를 일본 정치의 총담합 구조라고 했다. 그때까지 일본 정치는 사실상 ‘1(자민당)과 2분의 1(사회당) 판도’였다. 소선거구제를 하면 정책 논쟁이 활발해지고 결국 정권 교체가 가능한 양당제로 수렴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정치 개혁과 더불어 들고나온 것이 보통국가 일본과 관료정치 타파였다.

93년 오자와는 자민당을 탈당했다.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 개혁 법안 처리를 미룬 미야자와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에 동참하고 나서였다. 자민당 최대 적자(嫡子)의 반란이었다(오자와의 정치 개혁론은 다케시타파의 후계 싸움에서 밀려나면서 내건 술수라고 그의 정적은 주장한다). 직후의 총선에서 55년 이래의 자민당 일당 지배는 처음으로 막을 내렸다. 8개 정파의 비자민 연립정권이 들어섰다. 오자와는 11개월간에 걸친 이 연립정권의 막후 실력자였다. 이듬해 초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가 빛을 봤다.

그로부터 15년. 일본 정치는 역사적 전기를 맞고 있다. 1주일여를 앞둔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제1당은 요지부동이라는 여론조사다. 그동안 네 번의 중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자민당은 1당을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민주당은 약진, 후퇴를 거듭했다. 다섯 번만의 선거에서 제1야당의 집권이 가시권에 들어섰다. 정권을 선택하는 선거가 될 만큼 야당이 성장했다. 일본 정치사에서 처음이다. 93년의 비자민 연립정권 때는 자민당이 1당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를 빗댄 ‘헤이세이(平成) 데모크라시’란 얘기가 나온다. ‘혁명적 선거’라는 민주당의 구호가 낯설지 않다. 선거구제 개편의 대실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제도의 힘이다. 오자와의 비전과 반란은 그 쏘시개였다.

오자와는 그 새 이단아의 길을 걸어왔다. 자유당 당수 시절엔 자민당과의 연립정권을 꾸렸고, 민주당 대표 땐 자민당과의 대연립에 나서려다 상처를 입었다. 당은 그의 정책 실현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역정이다. 2년 전 참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를 이끌어내 아베·후쿠다 내각을 중도 하차시킨 것도 그였다. 그렇다고 그를 변절자로 보는 논조는 찾기 힘들다. 관료 주도 정치의 청산, 유엔 중심주의의 정치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비서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올해 대표에서 물러난 그는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하다. 총선 후 그의 당내 그룹이 100여 명으로 불어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자민당의 옛 다케시타파에 버금가는 세력이다. 일본 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이번 총선은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역시 시대의 숙제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네 번의 선거를 통해 나라의 틀이 서서히 짜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선거제도 개혁이 그 바탕이다.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는 주도 세력도 불가결하다. 나라의 틀에 대한 비전은 선행조건이다. 그것 없는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권력 놀음이 될지 모른다. 우리 정치의 고질병 중 하나가 지역주의와 지역색 강한 정당이다. 소선거구제와 깊이 맞물려 있다. 이 해묵은 과제를 이벤트나 행정적 조치로만 풀 수는 없다. 선거제도부터 수술해 보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싶다. 여야 의원이 한 선거구에서 동시에 탄생하는 중·대선거구제가 된다 해도 가시적 성과는 한참 후에나 나올 것이다. 한국 정치에 오자와의 신념과 배짱은 없는가.

오영환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