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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화유산 답사기]20.조선미술박물관의 단원그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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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5면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 회화 수장품 중에는 예외적이라 할 정도로 이인상 (李麟祥).이인문 (李寅文).김홍도 (金弘道) 의 작품이 여러 점 있었다.

이인상은 '소나무 아래서' 라는 대작 이외에 '수옥정 (漱玉亭)' '구학정 (龜鶴亭)' 등 진경산수를 그린 8폭 화첩이 있고, 이인문의 작품은 '여름 산수' '72세작 가을 산수' 등 빼어난 소품이 5점이나 있다. 이들은 모두 한차례 명품 해설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데 세인의 관심을 살만한 작품은 역시 김홍도의 그림일 것 같다.

조선미술박물관에는 이제까지 3점의 단원 김홍도 작품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나는 사자인지 삽살개인지 모르는 털북숭이 네발 짐승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늙은 짐승' 이라는 동물화고, 또 하나는 영지버섯인지 불로초인지를 한 광주리 캐어 짊어지고 있는 선동 (仙童) 을 그린 '약초를 캐고서' 라는 신선도이며, 마지막 하나는 금강산 구룡폭포를 대담한 붓놀림으로 명쾌하게 요약해 낸 '구룡폭' 이라는 제목의 산수화다.

세점 모두 단원의 의심할 수 없는 가품 (佳品) 으로 화제(畵題)와 도서 낙관이 또렷하여 단원 예술의 진면목을 엿보게 해준다. 사실 이 작품 3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조선미술박물관에서 나의 회화 감상은 즐거운 것이었다.

'늙은 짐승' 에서 터럭들이 부풀어 일어날 것만 같은 생동감, '약초를 캐고서' 에서 선묘 (線描) 의 강약이 드러나는 리듬감, '구룡폭' 에서 바윗결을 화강암의 절리 (節理) 현상에 따라 혹은 수직으로, 혹은 수평으로, 혹은 사선으로 죽죽 그어내리면서 곳곳에 운치있게 소나무를 그려넣음으로써 실경 (實景)의 사실감을 조형적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모습은 그림이 왜 사진보다 감동적일 수 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작이다.

이 세 작품은 남한에 있는 같은 소재의 단원 작품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림의 묘미를 완상할 수 있다. '약초를 캐고서' 의 신선 그림은 40대 중반의 그림으로 31세때 명작인 '군선도' 의 신선 묘사에 비할 때 훨씬 부드러워진 필치가 돋보였고, '늙은 짐승' 은 50대 초반 작품으로 그의 40대때 동물화에 비할 때 분방한 붓놀림이 눈맛을 후련하게 해주는 것이며, '구룡폭' 은 50대 중반 그림으로 그가 45세때 정조의 명을 받아 금강산을 다녀와서 그렸던 구룡폭포 그림에 비하면 그 원숙한 맛이 확연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화가의 일생을 보면 노년으로 갈수록 형상의 묘사는 간략해지고 생략이 많아지며, 채색은 단색조로 밝아진다. 그래서 섬세한 묘사가 아니라 은은한 분위기로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니 그런 원숙한 모습이 모든 분야에서 노숙한 경지에 이른 달인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케 하는 것이다.

조선미술박물관에서 창고에 보관된 원화를 보기 위해 목록을 제출할 때 나는 근래에 일본의 조총련에서 기증했다는 단원의 '게그림' 과 '화상 (畵像)' 이라는 제목의 수묵담채 인물화 (27.5×43.0㎝) 를 신청했다.

'조선유적유물도감' 제18권에 작은 도판으로 소개된 것을 보고서 심상치 않은 작품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시험 잘 치고 수능점수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 같은 마음으로 박물관 한쪽 작업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흰 명주 보자기를 나무 쟁반에 받쳐 들고 나왔는데 보자기를 풀어 젖히자 하얀 한지를 마름모로 귀맞춰 접어놓은 편화 (片畵) 한폭이 놓여 있었다. 나는 학예원들이 사용하는 흰 장갑을 빌려 끼고 포장지를 살살 벗겼다.

사실 박물관 관계자들은 하나의 작품을 다루는 것만 보아도 그의 실력이 몇 급인지를 안다. 장갑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끼는 것이 기본이고, 그림의 배접지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며, 연필은 가능해도 볼펜은 손에 쥐지 말아야 하고, 작품에서 얼굴을 멀리하여 입김이나 침이 튀는 일이 없어야 다룰 줄 안다고 한다.

요즘 텔레비전 문화재 프로에서 '진품명품' 을 손으로 막 만지는 것을 보면 내 가슴이 철렁거린다. 나는 남한의 미술사 연구자의 명예가 걸려 있다는 생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조심성을 보이며 말없이 5분, 숨죽이며 10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품을 다시 한지로 덮어 밀어두고는 비로소 무릎을 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건 단원의 자화상입니다!" 리정남 선생과 박물관 안내 강사는 나의 감동어린 외마디에 가까이 다가와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다시 그림을 펼쳐놓고 멀찍이서 바라보며 내 소견을 말했다. 나는 평소 김홍도가 어떻게 생겼을까 생각하면서 그가 그린 '군선도' 한쪽에 나오는 긴 얼굴의 청수한 젊은이가 아닐까 상상해 왔다.

왜냐하면 화가들이 상상의 인물을 그릴 때면 본능적으로 자기 얼굴을 닮게 그린다. 특히 이상적인 얼굴, 선남선녀를 상상으로 그릴 때면 동그란 얼굴의 화가는 동그랗게, 긴 얼굴의 화가는 길게 그린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폐에 그려져 있는 인물의 초상을 보면 세종대왕.율곡.퇴계 등의 얼굴이 이를 그린 김기창.이종상.장우성 등 화가의 얼굴형과 닮은 것도 이런 이치라고 생각한다.

꼿꼿하게 앞을 보고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선비의 자세는 절도와 당당한 기개가 동시에 느껴진다. 이마가 넓고 갸름한 얼굴에 짙은 눈썹과 맑은 눈빛은 준수한 자태가 역력히 드러나 있다.

옛날에 조희룡이 '호산외사 (壺山外史)' 에서 "김홍도는 풍채와 태도가 아름답고, 성품과 도량이 넓어 사람들이 신선같다고 했다" 고 했는데 그런 풍모가 서려 있다.

얼굴로 보아 30대 초반, 이미 어용화사 (御用畵師) 로 화명을 날리고 표암 강세황의 후견 아래 당당히 화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던 그때의 단원 모습이리라. 그림을 뚫어져라 다시 보니 탕건 아래쪽에는 망사의 마름모 무늬가 세밀하고 콧수염과 눈썹은 터럭 하나하나를 헤아리듯 그려넣었다.

그렇게 세필을 구사하고도 옷자락만은 거리낌없는 필치로 정리하여 개결한 품격이 살아나고 터럭만큼의 속기도 없다. 이 작품의 낙관을 보면 '김홍도인' 과 그의 자 (字) 인 '사능 (士能)' 두개가 찍혀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송은 이병직 장 (松隱 李秉直 藏)'이라는 소장인이 찍혀 있다.

서재 한쪽 아주 심플한 구성의 장탁자에는 벼루.연적.필통.도장.향로 등 문방사우가 있어 조선시대 선비의 멋과 풍류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사실 그럴 때 단원은 더욱 단원 같았던 것이다. 단원의 '자화상' 은 어느 면으로 보나 가장 단원다운 그런 명화였다. 나는 이 한점의 명화를 본 것만으로도 점당 50달러를 지불한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글 = 유홍준 (영남대교수.박물관장) 사진 = 김형수 (통일문화연구소 차장) ※다음회는 '조선미술박물관의 겸재 그림'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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