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여성호르몬은 억제,비타민·사우나는 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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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고 한다. 그러나 입맛을 잃으면 산해진미도 무용지물이다. 과학의 눈으로 바라본 식욕은 과연 무엇일까. 최근 국내외 연구를 통해 밝혀진 식욕의 정체를 살펴본다.

최근 여성호르몬이 식욕을 억누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군것질에 탐닉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식사관련 질환도 여성이 남성보다 9배나 많다. 이상체중의 50%를 초과하는 병적 비만도 여성이 남성보다 4배나 많다. 말하자면 여성이 남성보다 불안정한 식욕을 보이는 것.

미국 코넬의대 정신과 노리 기어리교수는 최근 인터넷 의학저널 메드스케이프에 "난소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이 식욕을 주기적으로 억누르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동물실험결과 월경 직후엔 여성호르몬 분비가 적어 식욕이 높아졌다가 배란 직전엔 여성호르몬이 최대로 분비돼 식욕이 떨어진다는 것. 왜 여성호르몬이 식욕을 억누르는지에 대해선 아직 명확한 설명이 없다.

다만 기어리교수는 "동물의 발정기에 해당하는 배란기에 식욕을 떨어뜨려줌으로써 생식이란 종족보존에 몰두하기 위한 진화론의 선택" 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한 달 주기로 찾아오는 배란기엔 식욕이 떨어져 있으므로 입맛을 돋우는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좋으며 반대로 폐경 직후 여성은 여성호르몬의 분비 중단으로 식욕이 올라가 살이 찌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운동과 사우나는 식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네덜란드 오픈대 연구진의 최근 연구결과 운동은 식욕을 떨어뜨리고 사우나는 식욕을 돋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식사 전엔 운동보다 사우나를 하는 것이 좋다.

인공감미료는 칼로리가 없지만 식욕을 돋워 비만예방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으로 밝혀졌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에 따르면 인공감미료는 식욕증가효과가 없다는 것. 따라서 뚱뚱한 사람은 설탕 대신 인공감미료로 단 맛을 즐기는 것이 좋다.

입맛이 떨어져 고생하는 사람들에겐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종철 (李鍾徹) 교수는 "기름이 많이 든 음식은 위장 내에서 식욕을 억제하는 CCK호르몬을 분비시키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고 설명했다.

지방이 많이 함유된 음식을 먹을 땐 소화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입맛을 잃지 않는 방법이다. 특히 6.25를 전후로 태어나 태아시절 영양결핍상태에 빠졌다면 지방분해효소를 분비하는 췌장의 기능이 떨어져 기름기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입맛이 떨어지기 쉽다. 따라서 지방분해효소를 소화제의 형태로 보충해줘야 한다.

반면 비타민은 가장 권할 만한 식욕 증진책이다. 李교수는 "비타민이 인체신진대사를 증가시키므로 식욕을 돋우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비타민 B가 많이 함유된 종합비타민제가 도움이 된다. 향신료가 풍부한 전채요리도 식욕을 돋우는 방법. 포도주는 특유의 향기가 뇌의 식욕중추를 자극하며 알코올도 위벽을 자극해 위산과 소화액 분비를 돕는다.

그러나 특별한 이유없이 식욕이 장기간 떨어진다면 중한 질병이 숨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李교수는 "우울증이나 암에 걸렸을 때는 필연적으로 식욕이 저하된다" 고 말했다.

반대로 주체할 수 없이 식욕이 올라가는 질환도 있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이 대표적 사례. 이 경우 많이 먹지만 오히려 체중은 빠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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