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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문화계 송년브리핑]학술/지성계,거품담론에서 반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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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올해 벽두부터 국제통화기금 (IMF)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경제난에 직면해 지식인들은 우선 아무런 고민없이 거품담론을 생산해온 자신에 대한 '반성' 을 중요한 화두로 삼았다.

'현대사상' 여름호가 별책으로 펴낸 '1998 지식인 리포트' (민음사刊)에서 최갑수교수 (서울대.서양사)가 지적했던 것처럼 아카데미즘에 고착된 대학사회, 외국 사조의 일방적 수용, 전통의 단절, 위축된 인문학 등이 반성의 주요한 목록으로 한해 내내 떠다녔다.

이와 함께 경제위기 진단과 새로운 전망찾기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같은 노력은 물론 명시적인 결론이나 새로운 전망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위기의 깊이와 폭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과정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시발전' 이라는 새 정부의 총노선과 관련해 국가.시장.시민사회의 역동적 관계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 것인가가 중심적으로 논의됐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정당성 위기로 국가가 후퇴하면서 야기된 시장과 시민사회의 갈등, 그 속에서 국가의 역할은 아직도 개혁방법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냉전적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적 대안찾기도 올해의 주목할만한 현상. 최근 유럽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제3의 길' 에 대한 관심이 지식인들 사이에 증폭됐다.

뭐니뭐니해도 지식인 사회를 가로질렀던 사건은 '월간조선' 11월호가 최장집교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사상검증으로 야기된 이념논쟁. 한국현대사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는 6.25에 대한 입장과 관련된 만큼 세력간.세대간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한국정치학회가 회원의 권익과 학문의 보호차원에서 학회 역사상 유래없이 발표한 성명, 해외의 저명한 한국학 연구자들의 崔교수 지지성명, 그리고 법원의 '월간조선' 11월호 배포 및 판매 가처분 결정 등은 과거의 사상논쟁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중요한 계기였다.

정부출연 연구기관 통폐합 논의가 시작되면서 각 연구기관도 몸집줄이기에 부심했다.

이런 가운데 8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세종연구소.KDI국제대학원을 통합해 가칭 '아시아대학원' 설립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사실상 새 정부의 이데올로기 생산을 위한 교육기관이라는 지적에 따라 계획 자체가 백지화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타격을 받은 것은 국어.역사.국학 등을 연구하는 한국학 연구기관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은 아직 그 정체성 마련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에는 제2건국위원회의 발의자로 알려진 한상진교수 (서울대.사회학) 가 원장으로 선임됨으로써 또다시 제2건국위원회의 산하기관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학에서도 기초학문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시나 취업과 직접 연관이 없는 기초과목 수강생들이 줄어드는 현상이 두드러졌던 것.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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