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소사]일제 대륙침략위해 설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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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우리나라 기상관측의 역사는 첨성대를 세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대적인 기상관측은 일제가 대륙 침략을 위해 목포에 임시관측소를 설치한 1904년 3월부터다.

일본측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군사전략적 목적에서 시작된 아픈 역사가 기상청에 담겨 있다.

1908년 대한제국이 농상공부대신하에 설치.운영하던 관측소는 1910년 한일병합과 함께 조선총독부로 넘어갔다.

이후 33년 서울종로구송월동 기상청 옛 청사에 기상관측소를 세우면서 기상청 '송월동 시대' 가 시작됐다.

해방 이후엔 미군정 문교부 관상국 소속, 48년 정부수립 뒤엔 문교부 소속의 국립중앙관상대가 송월동에서 관측을 계속해 왔으며 언뜻 보기엔 큰 연관성이 없는 교육과 기상이 한지붕 아래 있던 웃지 못할 시대는 62년까지 계속됐다.

62년 교통부 소속으로 이관됐다가 69년에는 다시 과학기술처 소속으로 넘어간 기상청은 이름도 자주 바뀌었다.

구한말부터 일제시대까지는 관측소와 측후소라 불렸고 해방 후 관상대에서 81년엔 기상대로, 90년엔 기상청으로 변천해왔다.

서울동작구신대방동 보라매공원내 신청사 (지하 2층.지상 8층.연건평 5천5백여평) 는 지난 96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백50억원을 들여 완공하면서 65년간의 송월동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신청사에는 지난 여름 '게릴라성 호우' 로 도입 필요성이 대두됐던 슈퍼컴퓨터가 설치되고 첨단 위성.레이더 장비가 들어오는 등 한층 발전된 기상관측 환경이 조성된다.

고려시대 태복감 (太卜監).태사국 (太史局).사천대 (司天臺).관후서 (觀候署).서운관 (書雲觀) , 조선시대 관상감 (觀象監) 으로 이어져온 기상역사가 전기를 맞은 셈이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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