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규제개혁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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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대중 (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9개월만에 정부는 중앙정부가 갖고 있던 규제 총 1만1천여건중 48%에 해당하는 5천3백여건을 철폐하고, 나머지 2천4백여건의 규제도 완화, 개선키로 결정하고 입법절차를 밟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여야의 대결분위기와 법개정 절차에 대한 이견 및 대립으로 입법절차는 지지부진하다.

아무튼 이는 정부수립 이후 처음 있는 대규모 개혁작업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이루어 낸 개혁이다.

우리 사회에서 왜 규제개혁이 절실히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사회 각계 각층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6.25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맞이한 오늘날 정부규제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전체 사회의 하향평준화와 고비용.저효율 경제를 초래한 주범으로, 국가경쟁력과 국민생활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비판받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의 지향을 국정의 기본철학으로 내세운 현 정부에 있어 규제개혁은 가위 운명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난 30여년 동안의 개발연대에 과도하게 도입된 정부규제는 관료적 권위주의시대의 핵심적 통치수단으로 작동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불균형을 잉태했기 때문이다.

개혁 내용을 보면 토지.노동.금융분야의 규제를 대폭 개혁해 생산의 3대 요소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한 점, 자율적 시민사회의 구축을 위해 가정의례제도를 대폭 개선한 점, 진료권 이용제한 제도 폐지, 예비군 대원 신고제도 폐지, 단순의약품의 약국외 판매허용 등 국민생활관련 규제의 개혁과 사업자단체 및 정부 산하단체 관련 규제의 대폭 정비는 의의가 크다고 본다.

특히 변호사회.의사회 등 전문 자격사 단체의 설립 및 가입강제의 폐지, 등록업무의 국가기관 회수는 통치방식에 있어 비민주적 권위주의체제의 극복과 다원적 민주사회로의 전환에 핵심적 계기가 될 것이다.

정부 위탁업무를 독점적으로 수행해 온 협회 등 각종 사업자단체에 대한 경쟁체제로의 전환은 소위 관변단체와 정부 부처의 유착고리를 끊음으로써 정권관리상의 프리미엄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담당자들에게 몇 가지 제언할 것이 있다.

규제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느냐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째, 대통령이 강조해 온 50%이상의 규제폐지가 숫자상으로는 달성 가능하나 국민이 느끼는 체감규제의 50%이상 감소효과는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규제개혁의 체감효과는 폐지되는 규제의 개수보다 규제의 품질과 집행과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의 효과가 하루라도 빨리 나타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대 (對) 국민 행정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지방자치단체의 규제개혁과 일선 행정공무원의 규제집행 행태에 대한 개혁이 있어야 한다.

좋은 규제가 잘 집행될 때 삶의 질이 높아지며 국민은 정부를 지지하게 된다.

둘째, 과도한 규제로 인해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것으로 인식된 건설.유통.영상 미디어.의약품.서비스 산업 등은 해당부처 장관 책임아래 추가적인 규제개혁과 산업경쟁력 회복 조치를 동시에 강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대형 사건.사고나 사회문제 발생 직후 냄비여론과 정치논리로 일관성없이 졸속으로 대량 도입된 규제가 불량.저질규제 생산의 주원인이다.

공무원도 대형사고를 이용한 기회주의적 편승으로 소위 '관원 (官願) 성 규제' 를 도입해서는 안된다.

넷째, 평소에는 자율을 소리 높여 외치다가 문제만 발생하면 정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국민의식의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언론과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도 규제개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다섯째, 개혁에 소극적일 수 있는 관련부처의 부처 이기주의적 행태, 이익집단 및 관변단체 등의 로비에 의해 개혁의 본뜻이 왜곡.변질되지 않도록 개혁관련법의 제.개정과정에서 대통령의 정치력이 충분히 발휘돼야 한다.

원래 국회의 의사결정 행태는 조용한 다수의 입장보다 목소리 높은 소수 기득권층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시동이 걸린 규제개혁을 잘 관리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성 (小成)에 만족해 일을 중단하거나 그르쳐서는 안된다.

개혁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이 궤도 진입을 위해서는 다단계 로켓에 의해 추진력을 얻어야 하듯이 개혁도 기득권세력의 저항에서 살아남아 현실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제정된 '행정규제기본법' 상의 선진적 제도들을 효과적으로 집행해 나갈 수 있도록 현재의 민관합동 규제개혁위원회를 더욱 강력한 개혁추진기구로 개편해야 할 것이다.

이성우(한성대교수.규제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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