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례 발사 연기하더니 러시아제 로켓 1단 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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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 건물에서 연구원이 발사가 중지된 나로호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우주발사체 기술 확보의 길이 멀고 험난하다는 사실을 이번 첫 발사 시도에서 한국 기술진은 실감했다. 러시아 엔지니어 100여 명이 오랜 기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 묵으면서 밀착 지원해 왔는데도 19일 발사를 코앞에 두고 중단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러시아 측이 ‘기술적 이슈’ 등을 이유로 여섯 차례나 발사를 연기한 끝에 날짜를 잡았는데 막판에 발사가 중지된 것이라 충격은 더 컸다.

왜 그랬을까. 발사 중지 후 한 시간여 뒤인 오후 6시에 교육과학기술부는 언론 브리핑에서 “발사 중지 원인은 고압 탱크의 압력이 낮아져 밸브 작동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확한 원인은 정밀 조사를 해봐야 안다”고 밝혔다.

나로호 로켓 1단의 문제를 잡아 내 발사를 중지시킨 건 자동발사 시퀀스 시스템이다. 발사 카운트다운이 이뤄지는 중에도 매초 단위로 발사체 전체를 정밀 점검해 나가다 이상이 나타나면 즉각 발사를 자동 정지하도록 설계돼 있다. 나로호는 엔진으로 들어가는 연료나 액체 산소 등을 보내는 파이프의 밸브를 여닫는 일을 고압의 헬륨 가스가 하도록 돼 있다. 전기 모터가 하지 않는다. 전기 모터는 영하 200도 이하로 내려가는 극저온 등 극한 상황에서는 기기의 신뢰성이 낮기 때문에 가스 압력을 사용한 것이다.

정부 발표를 종합하면 이번 발사 장애는 나로호 로켓 1단의 고압·극저온 액체 가스 통의 압력이 낮아져 밸브를 여닫는 등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때문으로 보인다. 압력이 낮다는 건 힘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10이라는 힘을 써야 밸브가 여닫히게 돼 있다면 그보다 약한 힘을 써서는 밸브가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압력이 낮아지는 원인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탱크에 연료 정량을 주입했을 당시에는 압력이 정상이었다 서너 시간이 지난 뒤 압력이 떨어졌다면 어느 곳엔가 연료가 샜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극히 미세한 균열이 생겨 극소량이 빠져나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길이 25.8m, 지름 2.9m의 로켓 1단 통에는 고압의 헬륨 가스, 액체 산소와 연료인 케로신(등유)이 총 130t이나 들어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러나 이 통을 러시아에서 제작해 한국에 가져온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연료나 액체 가스 등을 넣어 균열이나 결함 등을 점검하지 않았다. 텅 비어 있는 상태로 예행연습을 하고, 전기회로 등을 점검했을 뿐이다. 국제 로켓 계통에서도 통을 채워 점검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극히 미세한 결함은 잡아내기 어렵다.

댐을 예로 들어보자. 댐을 아무리 잘 쌓아도 물을 가두기 전에 틈이 벌어졌는지 점검해 봤자 이상을 발견하기 힘들다. 극히 미세한 틈을 발견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물을 채우면 그 틈은 금세 발견된다. 물은 틈만 있으면 새어 들어가고 밖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나로호 1단 빈 통도 이런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액체 산소는 영하 100도 이하다. 고압의 헬륨 가스는 400기압이나 된다. 이런 상태의 액화 가스가 빈 통에 들어가면 멀쩡하던 통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러시아는 그동안 수많은 발사체 개발 경험을 해 액체 가스 등을 넣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상 가능성을 발견하는 노하우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한국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카운트다운 중 결함 발견으로 중지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흔하다. 가벼운 결함이라면 곧 수리해 이른 시일 안에 재발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흥=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자동발사 시퀀스(Sequence) 시스템=발사 15분 전부터 수동이 아닌 자동 프로그램을 통해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는 시스템이다. 컴퓨터가 발사 직전까지 전체 시스템을 점검하다 문제를 발견하면 중지 명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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