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싱가포르] 上. 리콴유 아들 12일 총리 취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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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싱가포르가 새로 태어난다.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李顯龍.52)부총리가 12일 새 총리에 오른다. 아시아 최초의 '합법적인 부자 권력세습'이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대만의 장징궈(張經國) 전 총통의 경우는 강압적인 부자세습이므로 리 총리 내정자와는 다르다. 새롭게 출범할 '젊은 싱가포르'의 앞날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 리셴룽 신임 총리

싱가포르 독립 39주년을 맞은 9일 저녁 싱가포르 시내는 축제 분위기였다. 중심가 동쪽에 있는 국립경기장에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시민 6만여명이 모여들었다. 불꽃놀이와 카드 섹션, 공수부대의 낙하 시범 등 화려한 식전 행사가 끝난 뒤 싱가포르의 미래를 짊어질 50대의 새로운 지도자 리셴룽(李顯龍.52)부총리가 10여명의 각료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시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그의 부친인 리콴유(李光耀.80.현재 선임장관) 전 총리와 고촉통(吳作棟.63)총리가 단상에 올랐다. 행사장 안팎에는 '전진하는 사회' '함께 새로운 싱가포르를'이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행사 말미에 고 총리의 재임 기간 중 업적이 대형 스크린으로 방영됐다. 고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고별사를 하고 나서 행사장을 떠났다. 60대 초반의 한 시민은 "리셴룽의 등장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니라 싱가포르를 움직였던 기성 세대가 물러나고 젊고 능력있는 새 세대가 지도층에 포진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콴유 세대가 국가 독립과 경제 발전을, 고촉통 세대가 안정 속의 국제화를 각각 이룩했다면 제3세대인 리셴룽은 싱가포르를 '선진국 속의 선진국'으로 만드는 과제를 안고 출발한다. 리 총리 내정자는 이를 위해 '두 개의 날개'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경제는 고부가가치를 낳는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을 두 축으로 하고, 중국.인도라는 두 개의 경제대국을 연결하는 허브(중심) 기능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세금 삭감, 기업들의 연금 부담 경감, 노동자 임금 조정 등을 통해 외국인 투자 유치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 덕에 싱가포르의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연 100억달러를 넘고 있다. 미국.일본 등 10여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도 싱가포르를 다국적 기업의 중심 센터로 육성하겠다는 전략 때문이다.

싱가포르 경제는 지금 순항 중이다. 지난 상반기 중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9%를 넘어섰다. 아시아 금융위기와 테러와의 전쟁 등 각종 악재를 극복하고 이룬 성과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리 총리 내정자가 넘어야 할 산은 높다. 1990년 부총리에 취임한 이래 10여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았으나 '개발 독재'의 유산을 청산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일고 있는 '부자(父子)권력 세습'이란 비판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리 총리 내정자는 강인하고 목표를 세우면 타협을 모르는 성격"이라며 "아버지보다 더욱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엔 각료 회의 도중 자신과 맞서는 각료와 언쟁을 벌이다 그의 뺨을 때렸다는 소문이 퍼져 고 총리가 "토론이 격렬했을 뿐 낭설"이라고 해명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이런 성격은 지난달 전격 단행했던 대만 방문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원칙을 한쪽에 접어두고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을 만나 중국 측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싱가포르 국립대학(NUC)의 한 교수는 "리콴유 전 총리는 독립을 위해 공산당과 손 잡았고 처음엔 중도 좌파의 색채를 띠고 권력을 잡았다"며 "하지만 부친에게 '경제 우선주의'를 철저하게 교육받은 리 총리 내정자는 출발부터 보수 색깔"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 민주화.자유화의 물결이 금방 밀어닥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대다수 싱가포르인은 리 총리 내정자에 대해 "최선의 선택"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50대 후반의 한 택시기사는 "집안에서 잡담하듯 말을 생각없이 툭툭 하고 서민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싱가포르=이양수 특파원

***바로잡습니다.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게재된 '젊어진 싱가포르'라는 제하의 기획기사 세 편과 관련, 주한 싱가포르 대사관에서 세 가지 잘못을 알려와 바로잡습니다.

8월 10일자 15면에서 (리셴룽은)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한쪽에 접어두고 천수이볜 총통을 만나 중국 측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접어둔 적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8월11일자 14면의 "싱가포르는 항구와 공항을 미군 기지로 제공하고" 부분은 싱가포르가 미국 공군과 해군에 통과 편의를 제공할 뿐이며 기지를 제공한 적이 없으므로 바로잡습니다.

8월 12일자 15면의 "테마섹은 싱가포르 국내총생산의 60%를 창출하는 1000여개의 국영기업을 총괄한다"는 부분에서 '60%'를 '13%'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싱가포르 대사관은 말했습니다. 60%는 11년 전에 실시된 한 조사에 근거한 것이며, 또 국영기업뿐 아니라 다른 공공 부문의 기여도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3%는 싱가포르 통계국에서 가장 최근인 2001년도에 조사한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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