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영훈초등 6학년 어린이들의 '오늘의 지구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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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신문과 교육이 만나면 어떤 힘을 발휘할까. 지난 9~11일 만국박람회가 열린 서울영훈초등학교 (교장 박성방) 6학년2반 교실은 신문활용교육을 바탕으로 한 열린교육의 놀라운 효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교실에 7개관 마련

"어서 오세요. 저희 만국박람회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자는 여기 있습니다. "

어린이들이 내미는 여권에는 손님들이 7개 전시관을 돌아보며 '무일푼 세계여행' 을 즐길 수 있는 입장권이 들어있다.

어린이들이 모눈종이에 그린 설계도를 확대해서 만든 테노치티틀란대신전 모형과 삼바춤 추는 여인상이 눈길을 끄는 남아메리카관. 페루.브라질.칠레.볼리비아.아르헨티나 등 이 지역 나라들과 잉카문명의 역사.문화 등을 글과 그림으로 설명한 벽신문들이 만만찮은 준비과정을 엿보게 한다.

또 독재자 피노체트 관련 신문기사들과 함께 ▶면책특권이란? ▶피노체트의 죄 ▶모둠원들의 의견 등을 정리한 솜씨가 이 어린이들의 놀라운 시사 감각을 실감케 한다.

이 모둠에 속한 어린이들이 각자 연구해서 준비한 부분들을 또박또박 번갈아 발표하고 나면 관람객들이 함께 즐기는 순서. 한 어린이가 미이라 역할을 하고 관람객에게 흰 끈과 헝겊을 내주고는 미이라를 만들어보도록 한다.

미이라가 완성되면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저희들이 직접 끓인 브라질 커피를 맛보세요" 라며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대접한다.

압축스티로폼으로 만든 태국의 와트트라케사원은 동아시아관의 상징물. 한국을 포함한 일본.중국.인도네시아.미얀마 등 이지역 여러나라에 대해 조사해서 벽신문을 만든 어린이들이 번갈아가며 각국의 기후.역사.화폐 등을 조리있게 설명한다.

전시된 내용을 가지고 퀴즈를 만들어 답을 맞추는 관람객에게는 일본 무사의 투구 모형을 머리에 쓴 채 한국전통놀이인 투호를 즐길 기회를 준다.

이 모둠의 유승미.이혜민.최홍성 어린이가 일본의 역사를 만화책으로 그려낸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 관람객들은 녹차를 대접받으며 어린이들의 치밀한 준비와 따뜻한 손님접대를 치하하고 다음 전시관으로 향하게 된다.

이집트의 피라밋과 이탈리아 '진실의 입' 조형물 옆에 마련된 고대문명관. 지중해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들 사이에 문명이 전파되면서 영향을 주고받은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한결군이 문화의 이동경로와 특징 등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소개하는 모습에 감탄하고 나면 '피라밋 체험' 순서. 또 관람객이 '진실의 입' 에 손을 넣으면 어린이들은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한 적이 있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당황한 관람객이 머뭇거리다 "예" 라고 쑥스럽게 대답하면 '진실상' 을 주면서 '이탈리아 포도주 (사실은 포도주스)' 를 한 잔 따라주는 것도 이 어린이들의 귀여운 재치. 북유럽관.오스트레일리아관.아프리카관 등 모든 전시관마다 원주민의 집이나 사파리 등 조형물과 벽신문, 그 지역의 민예품과 소개 책자, 신문.잡지.인터넷 자료들을 망라해서 만든 홈페이지나 파워포인트 발표자료 등이 갖춰져 있다.

전시자료들 중에는 최근 그 지역에 대해 보도된 신문기사들을 모아 별도의

전시자료를 만들고 그와 관련된 자신들의 생각이나 토의 내용들을 정리한 솜씨도 수준급. 또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고 그 전시물과 관련된 퀴즈를 맞추면 어린이들 스스로 구운 과자라든가 바나나 한 조각을 상으로 준다.

그냥 둘러보는 박람회가 아니라 모두 참여하는 잔치로 꾸민 것이다.

또 비디오상영관을 두어 관객들이 잉카문명.북유럽의 문화유적 등에 대한 비디오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모둠별로 3주간 준비

모둠별로 어린이들 스스로 정한 지역에 대해 전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 17일. 3주일 동안 기획.자료 수집.조형물과 홈페이지 및 파워포인트 발표자료 만들기.이벤트 준비 등에 매일 2시간씩 할애했다.

그러면서도 정규 학습진도에 차질을 빚지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담임 심옥령 교사 치밀하게 준비한 통합교육과정. 2학기 사회과의 '우리와 가까와지는 세계 여러나라' 와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가 할 일' 을 중심으로 국어.실과.미술.음악.수학.자연 등 8과목의 관련 단원 활동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 학급 어린이들은 5~6명씩 모둠을 지어 만국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친구들끼리 미운 정 고운 정이 흠씬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엔 '너 때문에' 라면 서로 탓을 돌리고 나무라기 일쑤였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네 덕분에' 라며 서로 칭찬하고 고마와하는 일이 훨씬 많아졌어요. " 엄밀히 말하자면 이 박람회 준비는 지난 3월부터 시작됐다고 하는 편이 옳다.

심교사는 매일 아침 '오늘의 뉴스' 발표 시간을 갖고 신문 스크랩하는 습관과 요령도 길러줬다.

이러는 사이 어린이들은 어느덧 넓어진 시야로 토론을 생활화하고, 필요한 책이나 신문자료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벽신문을 만드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워진 상태에서 최근 3주일 동안 본격적으로 박람회를 준비한 것이다.

이 학급 어린이 38명이 모두 나름의 소질과 장기를 발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애썼다는 심교사는 "이 박람회를 치러낸 것은 첫아이를 낳은 일 버금가는 기쁨" 이라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열린 교육이란 이런 것

"철부지인줄 알았던 아이가 의젓하게 자란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

"우리도 이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 "이렇게 실속있는 진짜 공부를 하는 줄도 모르고 학원에 늦는다며 야단쳤군요. " 이 만국박람회를 구경한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다른 학급 어린이들이 털어놓는 칭찬.반성.부러움은 끝이 없다.

관람객 3백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내용을 정리.분석한 다음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이 못잊을 박람회는 모두 끝났다.

두툼한 개인별 학습파일과 소중한 기억들, 그리고 한결 넉넉하고 부쩍 자란 마음이 덤으로 남았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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