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아파트 80%가 안전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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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내 공동주택의 '원조' 인 서울시내 시민아파트들이 극심한 노환을 앓고있다.

60년대말 도심 판자촌 등에 지어진 아파트들의 노후화로 안전에 빨간불이 켜진 것. 붕괴 우려로 서대문구충정로동 금화시민아파트 2개동에 지난 8일 내려진 주민 대피령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서울시내에 남아있는 시민아파트는 17개 지구 1백19동. 이중 80%인 96개동이 안전도 이상 판정을 받았다.

이들 지역주민들은 "추운 겨울에 마땅히 이주할 곳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대피하라고 하면 큰 일" 이라며 불안해 하고있다.

◇ 현황 = 종로구청운동 청운시민아파트 11개동은 두 달전 새로 도색공사를 했는데도 벽체와 기둥에 갈라진 흔적이 남아있다.

경사가 심한 야산 위에 지어진 탓에 지표면 곳곳에는 아파트 무게 때문에 지반이 침하된 자국도 남아있다.

주민 1천5백여명은 5년전 자체적으로 재건축사업을 추진했으나 시유지 불하비용이 만만치 않아 지난해 이마저 포기한 상태라 시의 이주대책이 없는 한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난 75년 지어진 서대문구홍제2동 홍제시민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 5동 3층 계단 천장에는 길이 20㎝.폭 10㎝ 크기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철근이 밖으로 나와 있다.

진점순 (陳占順.41) 씨는 "이주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붕괴위험이 심각해진 뒤에야 갑자기 이주명령을 내리는게 말이 되느냐" 며 시급한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 문제점 = '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 에 따르면 아파트의 구조적 위험 정도에 대한 등급은 A~E급에 이르는 5단계. D급은 기둥.계단이 낡아 보수.보강시 한시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상태며 E급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즉시 개축해야 할 최악의 단계다.

그러나 금화지구의 예가 보여주듯 수십일만에 D급이 E급으로 악화되는 만큼 D급 수준의 시민아파트에는 언제든지 긴급대피령이 내려질 수 있다.

사실상 D.E급의 차이는 유명무실한 셈이다.

지난 97년부터 매년 30동 내외를 철거해 2000년까지 D급 시민아파트를 모두 정리하겠다는 서울시의 '시민아파트 정리5개년 계획' 도 문제. 재개발사업이 추진되거나 주민들의 재건축 의사가 있을 경우에도 건물 안전도 보다는 정리가 용이한 순서에 따라 철거계획이 짜여져 실제 붕괴위험 정도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 있다.

즉 시는 D급 중에서도 안전이 취약한 37개동은 매월 계측점검을 실시하면서도 정작 아파트 철거를 동숭지구는 98년, 청운.낙산지구는 99년, 삼일.연희A지구는 2000년 등 제멋대로 정해 놓았다.

이와 함께 철거를 눈앞에 두고서야 이주방법 마련에 부산을 떠는 등 철거대책 단계에 걸맞는 주민들의 이주대책을 세우지 않아 순식간에 D급이 E급으로 떨어질 경우 대책없이 집을 나와야 할 형편이다.

배익준.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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