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업계 환율급락 비상…환차손·적자수출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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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환율 급락으로 수출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두달새 환율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면서 일부에선 적자수출이 불가피해진데다 내년도 수출을 위한 신규 상담을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다.

환율 하락으로 많은 기업이 대외 이자 지급 부담이 줄어 득을 보고 있는 것과 달리 수출업계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원 - 달러 환율은 지난 9월 23일 1천4백9원을 기록한 이후 12월 10일 현재 1천2백7원까지 하락, 2개월반 만에 무려 2백2원이나 낮아졌다.

◇ 수출상담 중단 = 서울화곡동에서 필터 등 자동차부품 오퍼상을 하고 있는 D교역 金모 사장은 포르투갈로부터 5만6천달러어치 주문을 받고도 며칠째 응답을 못하고 있다. 독촉이 빗발치고 있지만 환율을 예측할 수 없어 속앓이만 하고 있다.

金사장은 "수출 마진은 5~10%에 불과한데 환율 변동폭이 이를 훨씬 웃돌아 팔면 팔수록 손해"라면서 "그렇다고 계속 주문을 거절할 수도 없어 한숨만 쉬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달러당 1천2백50원으로 받아놓은 수출 주문만도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

한국무역협회 IMF 대책반의 金인규 팀장은 "이달 들어 내년도 수출 주문에 대한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하소연해오는 수출업체가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 환차손과 적자수출에 울상 = 불과 10월까지만 해도 수출업체들이 연말 환율이 1천3백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 이 수준에서 수출오더를 받아놓았다. 그러나 11월 18일 환율이 3개월반 만에 1천2백원대에 진입하면서 불과 3주일 만에 원화가 1백원 가까이 폭락해 업체들의 적자수출이 불가피해진 것. 달러당 1천3백원대를 기준으로 수출을 마치고 네고를 준비중인 무역업체 S사 관계자는 "손해를 감수하고 물건을 내놓고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외화 수수료 부담을 덜기 위해 수출대금을 달러 외화예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업체들도 환차손에 애태우고 있다. 수출업계가 보유하고 있는 거주자 외환예금은 약 1백30억달러로 추산되며 이를 감안할 때 지난 3개월간의 환차손 규모는 약 1조9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무협은 분석했다.

중견 의류수출업체인 K사 관계자는 "달러당 1천4백원이 되면 팔려는 계산으로 외화예금을 보유하는 한편 필요한 운전자금을 은행 대출금에 의존해왔으나 환율 급락에 따른 환차손으로 1년 수출이 헛장사가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완구수출업체인 B사의 한 관계자는 "수출대금 1백50만달러를 외화예금으로 보유하고 이를 담보로 원화 대출을 받아왔는데 환율이 떨어지자 은행으로부터 추가담보를 독촉받고 있다"고 난감해 했다.

수출업계 관계자들은 "중소 수출업체들이 최소한의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달러당 1천3백원이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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