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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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6장 두 행상

철규가 파출소에서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사이, 변씨를 비롯한 세 사람은 파출소 주변 모퉁이길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연행되어간 지 삼십분이 흘렀는데도 풀려날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변씨가 결단을 내렸다.

태호와 승희에게 장사나 계속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세 사람이 할 수 있는 대책이란 것이 방면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면, 귀중한 시간을 허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시간 이상이 흘러간 뒤에야 파출소 앞길을 휘적휘적 걸어나오는 철규를 발견하였다.

얻어맞은 얼굴은 멀리서 보아도 모과처럼 울퉁불퉁하였다.

두리번거리던 그는 변씨를 발견하고 히쭉 웃었다.

"크게 다친 데는 없고?" 그제서야 철규는 통증을 느낀 듯 허리춤에 손을 얹고 얼굴을 찡그렸다. "얘기는 나중 하고 장꾼들 흩어지기 전에 어물이나 처분합시다. " "얼굴이 많이 상했는데? 어디 가서 찜질이나 하지. 그러다가 덧나겠어. " "걱정 없어요. 우락부락해 보여서 어물장사 하기엔 오히려 안성맞춤입디다. "

"아니래도 태호하고 승희는 장사를 계속하고 있어. 내가 장마당으로 떠밀었지. " 결리는 허리께에 반창고를 사서 수습한 다음, 시치미 딱 잡아떼고 본래 지키고 있었던 난전자리로 찾아가 여일하게 장사를 계속했었고, 변씨는 전단 뿌리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다른 난전꾼들에게 배짱을 보이는 것이었다.

오후 4시 무렵, 그들은 그날 계획하였던 매상을 채우고 나서야 좌판을 거두었다.

벌써 짧은 겨울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상주에서 숙소를 잡았다간 그들이 작정하였던 다음 날의 점촌장을 보기에 수월할 것 같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철규를 찜질이라도 해주자면 안동의 민박집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재빨리 어물짐을 수습한 그들은 안동으로 달렸다.

민박집에 당도한 것이 저녁 8시 무렵이었다.

승희는 방을 잡자마자 물을 끓이고, 태호는 약방으로 뛰었다.

찜질할 수건이며 뜨거운 물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 승희는 철규에게 바지부터 벗으라고 채근이었다.

그러나 벗으란 그녀의 말에 철규는 뱀 만난 여치처럼 화들짝 놀라 바지춤부터 여미고 들었다.

"겁탈하지 않을 테니깐 벗으세요. 그냥 두면, 신경통된 다는 걸 몰라서 그러세요. " "선배보고 하랄 테니깐, 그만 둬. " 그러나 담배를 태우고 있던 변씨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난 병구완하는 솜씨는 제로야. 아무래도 여자의 손길이 낫지. 고달 빼지 말고 벗고 엎드려. 칠칠맞지도 않은 물건 떼어갈까 봐 겁나서 그러나. 회칼 든 여자도 아닌데…. " 태호의 싸움에 철규가 난데없이 뛰어든 까닭은 이미 알고 있었다.

태호가 실토를 했기 때문이었다.

태호는 물론 자신의 신분을 보장해 줄 만한 증명서는 모두 갖추고 있었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와 같은 증명서들이었다.

그러나 앵벌이 조직의 우두머리인 그의 양부 (養父) 는 오래 전부터 태호를 가출신고해 두고 있었다.

그가 검문이라도 당했을 때, 영리한 경관이 있어서 자칫 컴퓨터조회라도 해 버린다면 태호는 곱다시 걸려들게 장치되어 있었고, 경관은 일 같잖게 한 건 올리게 되어 있었다.

정신없이 파출소로 뛰어가서 몸싸움을 대신 떠안은 철규의 뇌리를 스친 것이 바로 태호의 그런 속사정이었다.

물론 변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 가망은 없겠지만, 새삼스럽게 승희에게 하반신을 맡긴다는 것이 철규에겐 쑥스러웠다.

그러나 끝내 고집을 부리면 변씨가 심술을 부릴 수도 있었고, 승희에겐 생색을 한다는 비난도 없지 않을 것 같았다.

목욕한 지도 오래 되어 땟꾹이 시꺼멓게 앉은 볼기짝을 드러내고 엎디는데, 칼로 포를 뜨는 듯이 뜨거운 수건이 살갗 위로 착 달라붙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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