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주목받는 맹렬 힐러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행보를 눈여겨본 이들은 "대통령 부인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난 8월 빌 클린턴이 TV에 출연해 섹스 스캔들을 시인한 뒤부터 대통령 내외의 생활은 "제갈길 가자" 는 쪽으로 정리된 게 아니냐는 인상을 준다.

남편을 용서한 힐러리를 두고 대통령 부인의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가증스러운 여인' 이란 비난도 있었지만 그녀는 제갈길을 갔다.

그리고 비난을 행동으로 극복했다.

지난달 클린턴의 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하는 대신 힐러리는 태풍이 할퀴고 간 중남미 지역을 순방하며 남편 못지않게 미 주요 언론을 장식했다.

클린턴이 자신의 오랜 지지자였던 알칸소 친구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힐러리는 뉴욕 맨해튼 록펠러센터 성탄절 장식 점등식에 등장해 더많은 미국인들의 환호를 즐겼다.

여성 전문 '보그' 지 12월호 표지 모델로 등장한 힐러리의 우아한 자태는 전문 화장기술과 오스카 델라 렌타의 벨벳 의상이 꾸며낸 하나의 작품이다.

그러나 힐러리를 지켜본 이들에겐 예상치 않았던 그녀의 움직임이 남편에 대한 보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이번 주말 클린턴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앞두고 이스라엘 정부는 클린턴의 팔레스타인 방문일정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힐러리가 동반한다는 데 더욱 신경쓰고 있다.

힐러리는 지난 봄 팔레스타인 독립이 불가피할 것이란 폭탄발언을 한 적이 있고 한동안 뜸했던 대통령의 외유에 이번 만큼은 동반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을 막바지 구제하는 데 큰 몫을 했던 힐러리가 앞으로 고어 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솟구치는 힐러리의 엔도르핀이 남편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레임 덕에 접어든 미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주목할 인물은 힐러리가 아닌가 싶다.

길정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