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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도쿄에세이]필리핀서 수발받는 일본노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엔화 강세에도 늘어나는 일본 수출품이 있다.

노인 수출 (?) 이 그것이다.

노환으로 장기간 투병에 지친 노인들이 '저렴한 간호.생활비' 를 찾아 해외로 떠나고 있다.

최근 2년간 무려 2천여명의 일본 노인들이 고국을 등졌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필리핀 마닐라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4개의 대형 노인홈 (양로원) 이 있다.

노무라 (野村) 종합연구소는 마닐라의 수십만평 신도시 부지에 일본노인 전용 대형 복합단지도 추진중이다.

그러나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르는 이들이 가족 곁을 떠나 낯선 나라로 가는데 애달픈 사연이 없을 수 없다.

80대 중반의 미에코 할머니는 20년간 병수발해주던 60대의 며느리마저 노환으로 쓰러지자 지난해말 마닐라행 비행기를 탔다.

손자.손녀들이 며느리 병수발에도 벅차했기 때문이다.

12년간 병원치료를 받아오던 유지 할아버지 (76) 도 부인이 숨지자 미련 없이 마닐라로 떠났다.

간병인 서비스.의료보험 등 정부의 보조를 받고도 일본에서는 연금액 (23만엔) 을 웃도는 28만엔이 든다.

그러나 마닐라에서는 전문간호사가 24시간 일대일로 수발을 드는 데도 의식주 비용을 합해 16만엔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필리핀 정부도 '외화 획득원' 에 적극적이다.

관계장관들이 앞장서 영주권 취득을 돕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연중 온화한 기후인데다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전문간호사들이 24시간 함께 먹고 자며 수발해주는 노인천국' 이라 선전하고 있다.

외국의 일본 노인홈은 예외없이 공항에서 가깝다.

고국에서 날아오는 비행기라도 보고 싶다는 수구초심 (首丘初心) 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노인대국 일본의 슬픈 단면도가 엿보인다.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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