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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정상화 비사 물증 40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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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 요미우리 (讀賣) 신문이 발행하는 월간지 '디스 이즈 요미우리' 내년 1월호가 구체적 물증과 함께 50년대 후반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비사를 게재했다.

오코노기 마사오 (小此木政夫) 게이오 (慶應) 대 교수는 "자료공개는 14년간 어둠 속에서 진행된 한.일 교섭사에 새로운 빛을 던졌다" 고 평가했다.

◇ 당시 상황 =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은 53년 일본의 구보타 간이치로 (久保田貫一郎) 대표가 "일본이 (식민지) 통치 때 조림.전답.항만시설 등 경제적으로 공헌했으므로 청구권을 행사하겠다" 고 발언해 중단됐다.

"서구 식민지 지배.피지배 역사상으로도 전례가 없는 망언" 이라며 구보타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한 홍진기 (洪璡基) 당시 법무장관의 의견을 받아들인 이승만 (李承晩) 대통령은 '이승만 라인' 을 선포하고 일본 어선들을 대량 나포, 양국 관계는 일시 파국을 맞았다.

◇ 비밀 서한 = 56년 일본측 정계 거물 이시이 (石井)가 서울에 거주하는 김사목 (金思牧) 씨를 통해, 57년에는 부임을 마치고 돌아가던 주일 한국대표부 유태하 참사관을 통해 한국을 방문해 李대통령을 예방하고 싶다는 친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李대통령은 57년 3월 이시이 앞으로 거부 친서를 보냈다.

그는 ▶구보타 발언 철회▶일본 어민의 이승만 라인 침범▶일본 정부가 소련.중국.북한 등 공산주의 정권과 우호조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을 들어 이시이의 한국 방문에 반대했다.

◇ 잠정 합의안 = 57년 기시 노부스케 (岸信介)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면서 한.일 양국은 실무 차원의 잠정 합의안을 체결했다.

그러나 李대통령의 지시로 서명은 연기됐다.

기밀서류인 잠정합의 문서는 일본이 일본 내 외국인 수용소에 있는 한국인을 석방하는 대신 한국은 나포해 억류 중인 일본 어민의 송환에 합의했다.

또 일본은 국내에 있는 한국문화재를 인도하기로 약속했다.

일본은 이 합의에서 구보타 발언을 완전 철회할 것을 명기했으며 나중에 삭제됐지만 '57년 6월 미국의 견해에 기초해' 라는 문구를 넣어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에 미국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시사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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