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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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구르고 무대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부르는 ‘Totally Fucked’에 객석이 들썩였다.중년 관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터질듯하다 밋밋해지는 마무리가 아쉽지만 ‘기성세대의 잣대로 인해 상처 받는 10대 청소년들’의 저항과 아픔이 객석까지 오롯이 전해졌다.

국내 초연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한달 넘게 순항중이다. ‘스프링…’은 독일 표현주의 극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동명희곡이 원작이다. 1891년 독일 청교도 학교를 배경으로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한 도덕과 권위에 맞선 10대의 반항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뮤지컬로는 2006년 5월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뒤 같은 해 12월 브로드웨이로 무대를 옮겼다. 이듬해 작품성과 참신함을 인정받아 여덟 개의 토니상을 휩쓸었다. 그래미어워즈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도 수상했다.

개막 전부터 화제가 된 소재-자위행위·동성애·임신·낙태·자살·아동학대-는 관람하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그보다 수위가 훨씬 높은 영상물에 이미 길들여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파격’이란 수식어가 붙은 노출과 성행위 장면도 홍보 문구와 달리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무대 바닥의 한 조각(2m×1.5m)이 밧줄에 묶여 공중으로 올라가면 상반신을 노출한 벤들라(김유영)와 엉덩이를 드러낸 멜키어(김무열)가 조심스레 ‘첫경험’을 한다. 장면은 극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매끄럽게 흐른다. 조금씩 흔들리는 이 세트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청소년들의 심리와 맞닿은 듯하다.다만 스크린이 아닌 무대, 연극이 아닌 뮤지컬이란 점에서 생소하다. 1막 마무리에 이어 2막을 이들의 성관계 장면으로 여는 것도 예상 밖이다.

19세기 독일의 교실 안팎 풍경은 21세기 무대에서 겉돌지 않는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규범에 청소년들은 애완동물처럼 순응하며 살아간다. 선생님은 서사시(극중 학생들이 암송하는 서사시는 베르길리우스의아에네이스다. 딱딱한 라틴어 시를 반복하는 장면은 관객에게 이질감을 준다)를 외우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회초리를 휘두른다. 어른들은 ‘설교만 있고 답은 없는’ 말만 반복한다.

이런 세상을 향해 청소년들은 ‘앗, 엿 같은 인생…’을 외쳐댄다. 그러나 그 방법이 직설적이지 않다. 배우들이 노래를 할 때엔 품속에서 마이크를 꺼내든다. 위압적인 선생님(송영창)이 동작을 멈춘 상태에서 마이크를 손에 쥐어야 학생들은 억눌렸던 반항심을 표출한다. 노랫말엔 거친 욕설과 기성세대(교사·부모)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하다. 1980~90년대 전세계를 풍미했던 얼터너티브 록과 격렬한 감정을 표현한 몸짓이 이들의 폭발력을 더한다. 마이크를 품안에 다시 넣은 후엔 다시 순종하는 학생으로 돌아간다. 마이크는 말할 수 없었던이들 청소년들의 욕망을 끄집어내는 도구인셈이다.

그러다보니 넘버는 줄거리를 이어가기보다 상황을 암시하거나 해설하는 역할에 더 가깝다. 무대 위 양편에 마련된 객석에 나란히 앉는 배우와 관객, 단일 세트, 무대 위 7인조 라이브밴드 같은 연출도 신선하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조명이 비춰지는 벽의 그림·사진도 놓칠 수 없다. 이들 소품은 시대 배경을 보여주거나 때론 장면을 부연설명하는 조연 역할을 한다.

흔들리는 눈빛과 손놀림 하나하나까지, 심약한 열등생 모리츠 그대로인 조정석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모리츠가 마이크를 들고 세상을 집어 삼킬 듯 노래를 뿜어대는 장면에선 대리만족도 느껴진다. 죽음 직전에 다시 삶을 이어가기로 결심하는 멜키어의 마지막 곡 ‘자줏빛 여름(The Song of Purple Summer)‘도귀에 감긴다. 내년 1월 1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문의= 02-744-4337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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