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뇌사인정 이후의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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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간 세간의 논란이 돼 왔던 뇌사 (腦死) 의 법적 인정을 위한 법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의학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일반인 대다수도 뇌사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인은 그간 대학병원 단위에서 주로 뇌졸중 환자들을 진료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많이 뇌사상태 환자를 보아 왔고 그 판정이 틀린 적이 전혀 없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른 환자가 다시 회복된 경우를 본 적이 없으며 다른 문헌상으로도 본 일이 없다.

만일 그러한 보고가 있었다면 이는 뇌사의 개념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잘못된 뇌사 판정에 의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그간 본인은 뇌사는 사망으로 인정해 뇌사자의 가족에게 이러한 상태를 인식하게 하고 어떤 방향으로든 빨리 대처하도록 권고해 왔다.

그러나 뇌사판정이 뇌사자의 장기를 적출해 다른 환자에게 공여하는 이른바

장기이식과 결부되면 전혀 별개의 문제가 된다.

뇌사판정을 상당히 많이 한 나도 실제로 장기이식과 관련된 뇌사의 판정은 두세차례만 했다.

이러한 경우 뇌사판정을 단번에 결정할 수 없었고 6~12시간 뒤에 다시 판정하고 뒤이어 미심쩍은 기분이 있으면 뇌파검사나 다른 검사로 보충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왜냐하면 뇌사에 의한 사망판정과 뇌사에 뒤이은 장기이식을 염두에 둔 뇌사판정은 똑같은 뇌사판정이기는 하지만 후자의 경우 엄청난 정신적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선 뇌사자가 사전에 자기가 뇌사에 빠지면 자기 시체에서 장기를 적출해 다른 필요한 사람에게 이식해 주기를 원한 경우 이외에는 뇌사판정을 해 뇌사자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다른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람의 시체는 일반동물의 사체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만일 뇌사판정을 단지 장기이식을 위해서만 법적으로 인정하려는 것을 확대하면 뇌사 전단계인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들도 아무런 대뇌활동이 없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니 이 또한 사망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 그 장기들도 적출해 생산적 활동이 가능한 환자를 위해 쓰자는 식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 등에서는 식물인간 상태가 1년 이상 계속될 경우 적극적인 치료나 음식공급을 제한하자는 논의가 있으니, 이에서 더 나가면 이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들에 대한 장기적출 및 이식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는 노파심을 떨치기 어렵다.

차라리 이렇게 고민할 바에는 최근 시도되고 있는 것처럼 인간 유전자를 동물에 이식하고 유전자기법을 통해 동물의 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의학적인 입장에서 장기이식을 전제로 한 뇌사판정의 경우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뇌사판정 기준은 너무 엄격한 것 또한 사실이다.

6시간이란 시간 기준도 처음 뇌사판정된 시점이 이미 뇌사상태가 상당히 지난 시점일 가능성이 많아 뇌사상태에 노출된 장기가 손상될 수 있는 시간적 기준이 길다.

무호흡검사의 적용도 뇌사자의 장기에 또 한번의 저산소 상태의 충격을 주는 것이고, 평탄뇌파를 고집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7~10명으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 위원 3분의2 이상 출석에 출석 전원의 찬성에 의해서만 뇌사판정을 확정짓는다는 규정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즉 처음 뇌사상태에 들어가고나서 위원회 모임이 열려 뇌사로 판정되기까지의 기간중 이식가능했던 장기는 이식수술이 성공될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가 된다.

이번 입안된 뇌사판정안을 완벽하게 지킨다면 실제로는 현재까지 불법적으로 행해져 왔던 뇌사자의 장기이식술의 성공률보다 훨씬 성공률을 떨어뜨릴 것이다.

장기이식의 법제화와 더불어 장기매매를 알선하는 불법적인 조직들에 대한 규제 또한 현재보다 현격히 강화돼야 한다.

이러한 조직들이 시류에 편승해 더욱 예상하기 힘든 범죄를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왕 이런 입법조치를 취함에 있어 의료계 자체에서라도 장기이식을 할 수 있는 병원들에 대한 자격 요건을 엄격히 규정해 장기이식이 가능한 병원 수를 줄이고 정예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야 뇌사자 뇌사판정, 장기적출이나 기타 장기공여자의 장기적출에 관한 여러 감찰활동이나 통제가 쉽고 또한 의학적 견지에서도 소수정예에 의한 많은 장기이식술에 대한 경험이 학문적 발달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재규(서울대의대교수.대한뇌졸중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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