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1군 전염병, 1등급 발암물질 … ‘1’에 대한 편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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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범죄·1급 비밀·1급 정보·1급 유해물질·1군 선수…. 1로 시작하면 누구나 직감적으로 사안이 중하거나 거물이라고 느낀다. 으뜸·기본을 뜻하는 1의 속성 때문이다.

사는 게 각박해져서인지 보건·식품안전 분야에서도 요즘 숫자 1이 자주 등장한다. 이달에 중국에서 유행해 사망자까지 발생한 페스트(흑사병)는 법정 1군 전염병이다. 또 질병관리본부는 신종 플루보다 환자 수가 훨씬 많은 A형 간염을 1군 전염병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베이비 파우더에서 검출된 뒤 의약품에까지 공포가 확산된 석면은 국제암연구소(IARC)가 정한 1등급 발암물질이다. 또 피부를 검게 그을리게 하는 인공선탠, 일부 어린이용 샴푸 등 입욕·보습제에서 검출된 포름알데히드, 일부 참기름에서 극미량이 나온 벤조피렌도 모두 IARC의 1등급 발암물질 리스트에 들어 있다.

많은 사람은 1이란 숫자로 인해 더 큰 두려움을 나타낸다. 이 덫에 빠지지 않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려면 1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한다.

전염병예방법엔 법정 전염병이 1∼4군으로 분류돼 있다. 이 중 ‘첫째’인 1군은 치사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방역 당국은 빠른 속도로 전염되는 전염병에 1이란 숫자를 부여했다. 콜레라·장티푸스·세균성 이질 등이 1군에 속한다. 요즘 콜레라로 숨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막내’인 4군 전염병을 절대 무시해선 안 된다. 에볼라·두창(천연두)·뎅기열·황열·보툴리누스·사스 등 해외에서 유입된 신종 질환이 주로 포함된다. 신종 플루도 4군 전염병처럼 관리되고 있다. 4군 전염병이 유행하면 강제 격리 등 1군에 준하는 조치를 내릴 수 있어서다.

식품 내 유해물질의 독성을 거론할 때 요즘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되는 것이 IARC의 발암성 등급이다. IARC는 유해물질을 1등급·2A등급·2B등급·3등급 등으로 분류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도 이와 비슷한 분류를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약발은 IARC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IARC의 1등급 발암물질은 실험을 통해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들이다. 그러나 1등급 발암물질에 소량·단기간 노출되더라도 암이 걸리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단적인 예가 선탠 기구다. 최근 IARC는 ‘자외선 발생 전구’(Sunlamp)와 선탠 기구(Sunbed)를 1등급 발암물질에 포함시켰다. 식약청은 선탠 기구를 이용한 선탠을 피할 것을 권고했다. 30세 이전부터 선탠을 과도하게 받았다면 흑색종 등 피부암 발생 위험이 ‘다소’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선탠 이용자가 밤잠을 설쳐야 할 이유는 없다.

IARC의 1등급 발암물질 리스트엔 태양의 자외선, 갱년기 증상 개선을 위해 복용하는 여성호르몬제, 흡연과 간접흡연, X선 검사, PVC를 만드는 데 쓰이는 염화비닐 등이 들어 있다. 1등급 발암물질이 두렵다고 해서 바깥 나들이를 삼가고 X선 검사를 기피한다면 득보다 실이 크다. “모든 독성은 양(量)에서 나온다”는 독성학의 기본 명제를 기억하면 1이란 숫자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1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이 건강엔 더 마이너스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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