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휼미 실은 배 침몰하자 전 재산 털어 수천 명 구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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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04면

‘만덕 할망’.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델로 언급한 조선시대 의녀(義女) 김만덕(金萬德·1739~1812·사진)은 그의 고향 제주도에서 이렇게 불린다. 제주도 출신의 연기자이자 김만덕기념사업회의 공동대표인 고두심씨가 “어렸을 때부터 만덕 할망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말했을 만큼 제주도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한명숙 전 총리는 한 인터뷰에서 “신사임당보다는 김만덕을 닮고 싶다”며 “신분과 성의 불평등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먹여 살린 어머니 리더십을 배우고 싶기 때문”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경축사에서 언급된 제주 김만덕 할머니는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평소 ‘그 할머니, 굉장히 훌륭한 분이라고 하더라’고 말씀하시는 등 무척 감명을 받으신 듯했다”고 전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성공한 최고경영자(CEO)였고 전 재산을 기부함으로써 나눔을 실천한 김만덕이 이 대통령 자신의 삶과 오버랩되면서 일종의 롤모델로 인식됐을 수 있다. 김만덕기념사업회의 활동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한다.

김만덕은 사실 제주 관기(官妓)였다. 가난한 양반가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기생의 수양딸이 되며 기적(妓籍)에 올랐던 탓이다. 그러나 23세 때 양인의 신분을 회복한 후 관기 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객주를 차린다. 당시 객주는 여관과 식당뿐 아니라 특산물을 거래하는 중개상 역할까지 했다. 만덕은 뛰어난 사업가 수완으로 자신의 객주를 제주 최대의 무역거래소로 키운다. 그러던 1795년 계속된 흉년으로 제주도민 수천 명이 굶주리게 됐다.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마저 선박이 침몰해 받지 못하게 되자 만덕은 전 재산을 털어 500섬의 곡식을 사서 백성들에게 나눠준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정조는 그의 소원을 물어 궁궐까지 불러 치하하고 금강산을 유람하게 해준다.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은 『만덕전』을 통해 실존 인물 만덕의 삶을 후세에까지 전했다. 만덕의 사후에 제주로 유배를 왔던 추사 김정희는 ‘은광연세(恩光衍世·은혜로운 빛이 세상에 널리 퍼진다)’라는 편액을 써서 만덕의 일가에 보내기도 했다.

한편 사업회는 중앙일보와 함께 오는 10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 섬 쌓기’ 행사를 연다. 십시일반으로 쌀을 모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이러한 나눔 캠페인 등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민간 차원의 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게 뒷받침할 제도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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