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선생님 억울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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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도둑으로 몰린 한 초등학생이 자살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담임교사도 자살을 기도했다.

한 가정의 불행이고 한 학교의 불상사지만 크게 보면 우리 초등교육의 문제점이 이 사건 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한다.

학교도 작은 사회다.

또래의 집단이 모인 교실사회에서 온갖 형태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도난.구타에서 따돌림.괴롭히기에 이르기까지 교사도 모를 작은 사고가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사고에 대해 학교와 교사들은 과연 현명한 대처를 하고 있는가.

문제의 도난사건은 두달 전에 일어난 것이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교사는 자살한 학생을 지목해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평소 문제아였거나 다른 학생들의 제보가 있었기 때문에 용의자로 지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학교와 교사로서의 대처방식은 잘못됐다.

확증도 없이 어린 제자를 도둑으로 몰아 윽박질렀다면 교사로서의 위치를 망각한 처사다.

더구나 담임교사로서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상처받은 학생의 아픔을 도닥거려주는 성의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 어디에도 이런 보살핌의 흔적이 없다.

'성공하는 가족들의 7가지 습관' 을 쓴 스티븐 코비는 이렇게 적고 있다.

코비는 한달에 한번씩 딸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딸은 자신의 고민과 불평을 털어놓는다.

아버지는 이에 대해 어떤 비난도 하지 않은 채 경청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어느날 이 대화시간에 딸은 울음을 터뜨리며 고백한다.

"지난 수학시간에 남의 답안지를 훔쳐 봤어요. " 아버지는 대답한다.

"그런 비밀을 간직하느라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느냐. 진작 이야기했으면 너를 더 빨리 도와주었을 텐데. " 이튿날 부모와 딸은 함께 담임교사를 만나 사정을 이야기했고 교사는 수학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선배 학생의 도움을 받는 배려를 했다.

우리의 학교와 가정이 자녀와 학생에게 이런 식의 배려를 하고 있는가.

부모는 학교를 탓하고 학교는 가정을 탓하며 서로 책임을 미룰 뿐이다.

무려 두달 동안 도둑취급을 당하면서 학교를 드나들었을 어린 학생의 고통을 덜어줄 어떤 대화통로나 구원의 손길도 없었다.

물론 작은 상처로 툭 하면 자살을 택하는 허약한 심성의 요즘 아이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고민과 상처를 감싸줄 가정과 학교의 알뜰한 보살핌의 장치가 더욱 긴요한 것이다.

새 학교문화 창조는 바로 이런 문제점을 풀어 주는 학교문화의 개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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