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선열들의 피·땀·눈물 얼룩진 15개의 태극기, 문화재 등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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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18면

태극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대한민국이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깃발이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태극기는 한민족 현대사의 아픈 굴곡을 그대로 반영한다.

태극기는 알고 있다, 大韓 두 글자의 가치를

국기가 필요하게 된 것은 외세의 침탈로부터 비롯됐다. 1875년 조선군대는 인천 앞바다에 접근한 일본 군함 운요호에 발포했다. 다음 해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은 조선정부는 태극장을 국장으로 정했다. 그때부터 관아의 문짝과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부채에 태극 문양이 도안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태극기의 수난이 시작됐다. 1910년 한일합병으로 조선이 멸망해버렸기 때문이다.

‘태극기’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하던 때부터다. 그날 정오에 서울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과 함께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참여한 국민은 모두 국기를 들고 나오기로 했는데 ‘조선국기’로 부르던 이름을 일본 관헌이 알지 못하도록 ‘태극기’로 부르기로 했던 것이다.

태극 문양은 동양적 우주관을 표현한다. 우주 만물이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생성하고 발전하는 섭리를 표현한 태극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했다. 조선왕조의 대궐에서는 8괘로 장식된 태극 깃발을 어기(御旗)로 사용하기도 했다.

태극기는 다섯 가지 정신을 표현한다. 바탕의 흰색은 평화를 상징한다. 태극의 원형은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지 않은 우주의 근본을 나타낸다. 음양의 홍(紅)은 양(陽)이요 청(靑)은 음(陰)이다. 네 괘 중 건(乾)과 곤(坤)은 하늘과 땅을, 이(離)·감(堪)은 해와 달을 뜻한다.

광복 64주년을 맞아 특별한 태극기들을 만나본다. 21세기의 우리는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치지만 지난 세기 이 깃발은 암담한 현실을 밝히는 횃불이었다. 조선 말기로부터 한국전쟁까지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열다섯 점의 태극기들은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글 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사진제공=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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