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그런 것 몰랐다… 꼬박 1년 '되는 사업' 준비한 덕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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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24면

김영달 아이디스 사장은 “기술적으로 차별화한 제품으로 치밀한 전략을 세워 글로벌 성장 시장에 접근한 덕분에 큰 위기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이지만 영상보안 업계에서 ‘아이디스’는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에 비견된다. 이 회사는 폐쇄회로TV(CCTV)를 업그레이드한 디지털 영상보안장치(DVR) 분야에서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 영국 데디케이티드마이크로스(DM)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일본의 소니·미쓰비시 등을 한 계단 아래로 밀어냈다. 1997년 창업해 12년 만에 이룬 성과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경영학자 헤르몬 지몬이 말한 ‘히든 챔피언(숨은 강소기업)’이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 무협지 같은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있을 법도 했다. 그러나 이달 11일 오후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영달(41) 사장은 “특별한 위기는 없었다”며 엷게 웃었다.

CEO가 꼽은 CEO, 위기 경영의 지혜를 듣는다 ③ 김영달 아이디스 사장

-지난해 매출이 812억원인데 올 상반기는 358억원에 그쳤다. 10여 년간 매출 성장률이 20%가 넘었는데 올 들어 성장세가 조금 꺾였다.
“(크게 웃으면서) 한 대 맞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수출에 브레이크가 걸렸다(이 회사는 전체 매출에서 수출 비중이 90%에 이른다). 그러나 영업이익률은 아직도 20%가 넘는다. 정확히는 24%다. 회사의 체력은 더 좋아졌다. 특히 7~8월 들어 주문량이 늘고 있다. 전체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영상보안장치는 계속 성장하는 분야다. 어려운 시기를 경쟁사를 제칠 호기로 여기고 있다.”

-DVR 시장은 업체들의 부침이 극심한 분야다. 이 업계에서 살아남은 비결이라면.
“서로 지향하는 시장이 달랐다. 우리는 제조 경쟁력이 아니라 기술 경쟁력으로 밀고 나갔다. 처음부터 프리미엄 마켓(고급제품 시장)에 들어갔다. 경쟁 제품보다 적게는 20%, 많게는 3배가량 비싸지만 우리 제품만 찾는 바이어가 많다. 값싼 제품으로 승부를 걸려 했다면 벌써 중국·대만 업체한테 뒷덜미를 물렸을 것이다.”

-아이디스 제품은 무엇이 다른가.
“DVR은 24시간, 365일 안정적으로 가동돼야 한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서버 같은 것이다. 한 번은 세븐럭 카지노에서 DVR 입찰을 부치면서 테스트만 6개월을 하더라. 우리 제품만 합격 판정을 받았다. 세계 시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인정받았다. 그 덕분에 창업 초기부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나 뉴욕 지하철, 호주 시드니 올림픽 주경기장 등에 설치될 수 있었다.”

-경쟁사들이 하나같이 쟁쟁한 글로벌 기업이다. 한국의 조그만 벤처업체라 견제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웃으면서) 글쎄, 특별한 기억이 없다. 기술이 워낙 탁월했다.”

김 사장은 몇 번이나 “사실이 그렇다”고 강조했다. KAIST 전산학과 박사과정으로 있던 그가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미국 연수를 다녀오면서부터. 지도교수 추천으로 95년부터 1년간 실리콘 밸리에 다녀왔는데 그곳 벤처기업들의 역동성에 감탄해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귀국 뒤 창업할 동료를 구했는데 모두 네 명이 모였다”며 “정진호 연구소장, 류병순 미국지사장 등이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로 갈지(사업 아이템)보다 ‘버스에 태울 사람’을 먼저 결정한 셈이다.
“그렇다. 창업 동지 다섯 명이 모여 내내 사업거리를 궁리했다. 화상회의 시스템, 바이오 기술, 인공지능 인식 등 수십 가지 아이템을 놓고 저울질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CCTV였다. ‘녹화 화면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두는 것보다 PC에 저장하면 훨씬 쉽게 검색하고 재생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연결한 것이다. 정식으로 회사를 차리기 전 꼬박 1년을 그렇게 궁리하면서 지냈다. 지나고 보니 보약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과학 영재들이 CCTV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미지근했다. 모교 교수들조차 “조금 더 때깔 나는 사업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김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실리콘 밸리에서 배운 창업 메시지는 분명했다. ‘▶세계 시장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기술이어야 한다 ▶대기업이 뛰어들지 않았거나 주력하지 않는 분야를 노린다 ▶새로운 시장 개척보다는 기존 시장을 대체할 신(新)병기로 승부한다’는 것이었다. 요새 말로 ‘히든 챔피언’이 되겠다는 것이다.”

화려한 비즈니스는 아니지만 DVR이 여기에 딱 맞아떨어졌다. GE·소니·지멘스 같은 글로벌 기업이 보안장비를 출시하고 있었지만 비주력 사업이다 보니 아이디스로서는 승산이 있었다. 영상보안장비 시장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게임처럼 ‘무모한 도전’도 아니었다. 또 아날로그 장비가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신규 진입자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요컨대 시장은 존재하는데 새 기술로 새 판을 짤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 사장은 “목표가 분명한 데다 사업 아이템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다 할 위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제품 개발은 어떻게 했나.
“철저하게 고객 위주로 했다. 대학원 시절 우리는 전 세계 최고·최신의 정보기술을 배웠다고 자부한다. 그런 것에 비하면 DVR은 폼 안 나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동차 기술로 자전거를 만드는 중’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이럴 때 네발자전거를 만들면 망한다. 대신 엔진을 단 자전거로 특화해야 한다. 회사를 설립하고 8개월 동안 골방에 파묻혀서 연구한 끝에 ‘IDR-1016’을 내놓았다. 업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엄지손가락을 쳐들더라. 성공을 확신했다.”

-그래도 시장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고객의 요구를 따르다 보니 저절로 됐다. 창업 초 미국 전시회에 나갔는데 한 바이어가 ‘우리 직원은 중졸 학력의 흑인이 대부분이다. 마우스 더블 클릭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기계를 어떻게 만지느냐’고 핀잔을 주더라. 곧바로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회사 몸값이 높아졌다.”

-‘위기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과거 10년간 DVR에 집중했다. 시장점유율도 탄탄해졌다. 순수 투자 여력도 1400억원에 이른다. 이제는 보안장비 업계의 세계적 리더가 되는 것을 노려볼 만하다. 보급형 제품으로 라인업을 수직화하고 보안카메라나 출입통제 시스템 같은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2005년 말엔 보안카드 프린터 전문회사인 아이앤에이시스템을 인수했다. 창업 20주년인 2017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게 중기 목표다.”

-벤처기업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창업에 도전한다는 데는 찬성이다. 다만 꿈을 너무 높게 잡아선 곤란하다. 목표는 두 발로 점프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하지 구름 속에 있어선 곤란하다. 사업 한 방에 빌 게이츠처럼 될 수 있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다음 인터뷰 대상자를 추천해 달라.
“박용만 두산 회장을 추천한다. 90년대 후반 두산 구조조정을 지휘한 것이나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건재함을 과시한 것이나 위기관리 하면 박 회장이 ‘달인’ 아닌가 싶다.”



●다음은 박용만 두산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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