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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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김경욱, 문학과지성사, 350쪽 9000원

<본문 36~37쪽>

‘너바나Nirvana’라는 밴드가 있었다. 그 밴드의 리드 보컬인 커트 코베인은 1994년 사망했다. 4월 8일의 일이다. 자신의 집에서 총상을 입고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에 싸여 있지만 자살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서가 발견되었고 죽기 전부터 이미 치사량에 가까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기 바로 전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약물 중독 치료를 위한 재활원에 있기도 했다. 로커다운 최후가 아닐 수 없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로 출발한 너바나의 불가사의한 상업적 성공은 밴드의 멤버들조차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당황할수록 대중적 인기는 높아만 갔다. 높이 날수록 추락에의 욕망은 강해진다. 21세기의 물질문명을 주도하는 컴퓨터 디지털 산업이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되었듯이 그 물질문명을, 탐욕스러운 기계들을 깨부수라고 울부짖는 밴드들도 차고에서 출발한다. 삶의 아이러니란 그런 것이다.

평생 도박판을 전전하다 남해안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아버지라는 사내는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생은 도박과 같아. 한 판의 게임인 게지. 게임에선 그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단 말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뜻이야. 게임에서의 본질적인 승리자는 게임 그 자체인 거야. 아무도 게임에서 승리자가 될 순 없어. 아무도.”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죽는 순간에도 그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다고 했다. 그때 그는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쥐고도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궁극적인 승자는 그의 말대로 게임 그 자체였던 셈이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는 평생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받아보지 못했다. 평생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패였던 것이다. 노름꾼의 최후 치고는 행복한 결말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그가 내게 남긴 것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것은 그 말뿐이다. 그의 삶은 전혀 교훈적이지 않았지만 죽음만큼은 뭔가 교훈적인 구석이 있었다.

“형사 양반, 혹시 커트 코베인을 누가 죽였는지 아시오?”
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형사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피우며 내가 물었다. 나는 순순히 모든 것을 털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는 인생일 뿐이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을 게임에 참여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기꺼이 패배자가 되어줄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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