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감독들 충무로 대거 진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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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55년 '미망인' 을 만든 박남옥 감독 이래 올초 '러브러브' 를 만든 이서군 감독까지 지금까지 국내에서 장편영화 (극장개봉) 를 만들어온 여성감독은 모두 8명. 그렇게 많은 감독들중에 여성감독이 열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올연말부터 내년까지 여성감독들이 대거 영화계에 진출한다.

연말에 개봉될 '미술관 옆 동물원' 의 이정향 감독을 필두로, 현재 제작준비로 여념이 없는 이미연.정아미.홍윤아 감독 등이 그들. 이들은 한국영화아카데미, 프랑스.미국 유학파 혹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등으로 일선 제작 현장에서 톡톡히 경험을 쌓아온 '일꾼들' 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으게 한다.

심은하.이성재를 주연으로 '미술관옆 동물원' 을 찍은 이정향감독 (34) 은 최근 촬영을 막 마치고 편집작업에 들어간 상태. 시나리오도 직접 쓴 이감독은 작품의 완성도와 사실적 화면을 위해 한 장소에서 장면을 뛰어넘어 한번에 촬영하지 않고 스토리라인 그대로 촬영을 고집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기 출신인 그는 아카데미 출신 첫 여성감독으로도 기록될 전망. 대학재학 (서강대 불문과) 시절 모초코렛 CM송을 작곡했으며 86년부터 지금까지 연극과 다큐멘터리.영화를 넘나들며 각본.작곡.연출경력을 쌓아왔다.

지난 5월 흥행돌풍을 일으킨 '여고괴담' 의 속편 연출은 이미연 감독 (35) 이 맡는다.

프랑스 유학파 출신인 그녀는 '초록물고기' 연출부를 거쳐 '조용한 가족' 의 현장 프로듀서로 일했다.

이감독은 "박기형 감독이 이뤄놓은 성과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지만 단순한 '속편' 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한다는 컨셉이 맘에 들어 연출을 맡기로 했다" 고 했다.

'여고괴담2' 는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 한편 스릴러물 '비밀' (가제) 을 준비하고 있는 정아미감독 (27) 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대학재학 (한양대 연극영화과) 때 홍콩가수 알란 탐의 뮤직비디오를 찍은 이래 지금까지 4편의 단편영화와 신승훈.김건모.이소라.신해철 등 가수들과 50여편의 뮤직비디오 제작 이력을 갖고 있다.

신인감독을 찾던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 정태원씨는 "정감독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신작영화 연출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고 말했다.

이밖에도 뉴욕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홍윤아 감독이 영화사 프리시네마를 제작사로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월요일' 연출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여성감독들은 한결같이 '여성' 이라는 꼬리표를 달가워하지 않는 입장이다.

이정향 감독은 "스태프들이 잘 협조해주었다. 결국 남성.여성을 떠나 문제는 작품의 완성도 아니냐" 고 반문했다.

한편 '여고괴담' 의 제작사인 시네2000은 여성감독을 기피해온 관례를 깨고 두 여성감독 (이정향.이미연) 과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대표 이춘연씨는 여성감독들의 진출에 대해 "감독을 선정하는데 여성이라는 점이 특별하게 고려된 것은 아니다.

요즘 제작현장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여성인력이 부쩍 늘어나 선택의 폭이 조금 넓어졌다.

그들의 경험과 재능을 고려해 제작을 추진했을 뿐" 이라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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