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미의 열린 마음, 열린 종교] 12. 콥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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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이집트인 칼리드 하바시. 콥트교 신자인 그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애급 땅, 이집트. 이슬람 국가인 이집트에 오랜 전통의 기독교가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이집트의 기독교인 콥트교(Coptic Christian)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단성론자(예수의 본성을 전적으로 신성(神性)이라고 믿는 교회)로 찍혀 이단시됐으나 지금까지 원시 기독교의 정신을 엄격하게 지켜왔다. 640년 이집트가 아랍에 정복된 뒤에도 이슬람 대신 기존의 토착 기독교를 믿는 사람을 킵트(Qibt) 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콥트라는 단어로 세계에 알려졌다.

콥트교는 예수 사망 직후인 서기 40년께 성립됐다. 예수의 제자인 마가가 알렉산드리아에 기독교를 전파했고, 이후 세계 기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할 만큼 번창했다. 수도원 제도를 시작한 것도 콥트교회다.

이집트는 성(聖) 가족(요한과 마리아, 아기 예수)이 헤롯왕을 피해 살았던 피신처다. 아기 예수 가족이 머무른 곳과 지나간 자리마다 교회와 수도원이 들어섰다. 성 가족은 3년 넘게 베들레헴에서 가자 지구로, 다시 시나이반도 북쪽으로 이동했는데 그들이 거쳐 간 곳, 물을 마신 곳, 임시로 거처한 지하방 등이 모두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현재 이집트 인구 중 70%는 무슬림이고 30%는 콥트교인이다. 다수의 무슬림과 소수의 콥트교인은 초기 교회처럼 조화롭게 살고 있다.

주한 이집트 대사관의 칼리드 하바시(37) 행정관. 카이로에서 태어나 카이로 행정대학에서 상업.회계를 공부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고국에 가 같은 콥트교인과 결혼하고 최근 한국에 돌아왔다. 곧 아기가 태어나면 서울에 콥트교인이 하나 더 늘 것이라며 좋아한다. 서울에 있는 이집트인이 100명에 가깝지만 콥트교인은 10명 정도. 그는 대사관 직원 10여명 가운데 유일한 콥트교인이다.

대사관을 찾았을 때 마침 이슬람의 예배가 열렸다. 다른 직원이 알라에게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그는 혼자 콥트 기도문을 읽고 있었다. 한 지붕 밑의 두 종교. 이슬람 국가에서 콥트교인으로 살기가 어렵지 않으냐고 하자 그의 눈이 커졌다.

"어디까지나 조화 속에 살아요. 종교를 떠나 우린 먼저 같은 이집트인이잖아요. 이집트에서 콥트교인으로 태어난 것은 축복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예수님을 못 만날 수도 있었겠지요."

그는 5대째 콥트교 집안에서 성장했고 친척 중엔 콥트교 신부도 있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성탄절과 부활절이다. 콥트교의 성탄절은 1월 7일. 성탄 40일 전부터 단식을 한다. 또 부활절이 오기 전 55일간 단식을 한다. 해가 뜨기 전, 해가 진 후에만 먹는데 육식을 피하고 올리브유로 요리한 음식만 먹는다.

칼리드는 어려서부터 단식을 지켜오고 있다. 성경 읽기와 기도도 만만치 않다. 말과 글을 배워 처음 읽고 쓴 게 성경이기에 자연스럽게 몸에 굳어졌다. 기도도 무슬림(하루 다섯번)보다 자주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위로받고 살 수 있겠어요. 하느님에게 등을 돌리면 문제만 생기는데 요즘 사람은 점점 교회와 멀어지는 것 같아요."

그가 소매 깃을 걷었다. 손목에 작은 십자가 문신이 있다. "태어난 지 며칠 만에 부모님이 새겨 주었어요." 콥트교인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십자가를 손목에 새기고 산다. 이슬람 국가 안의 기독교. 그리고 양자의 공존. '예수'와 '무함마드(마호메트)'의 갈등이 위태위태한 오늘의 지구촌에서 콥트교의 위치는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김나미<작가.요가스라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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